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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을 바라보는 지리학적 시선
일상의 지리학 (박승규 저, 책세상, 2009)
[154호] 2009년 05월 04일 (월) 오태영 국어국문학과 강사
   
 
 

일상의 지리학 (박승규 저, 책세상, 2009)

 
 

인간은 공간적 동물이다. 인간은 공간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삶을 영위한다. 인간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행위 근거를 찾고, 자기를 정립한다. 한편, 공간은 인간에 의해 창출되고 변형되며 소멸된다. 공간은 인간에 의해 비로소 공간다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이 개인의 주체성 형성의 토대로 작동하듯이, 공간성 또한 공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그 속에서의 인간 행위에 의해 창출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낯익은 일상 공간의 의미에 천착해 삶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생성과 변화가 반복되는 삶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나와 우리를 알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선과 해석으로 전통적 지리학을 해체하고 ‘이름 짓기’를 통해 그것을 재구성하고자 한” 박승규의 『일상의 지리학』은 흥미로운 저서이다.

저자는 기존의 지리학을 ‘다름의 지리학geography of where’, ‘같음의 지리학geography of nowhere’, ‘배치의 지리학geography of arrangement’, ‘리좀의 지리학geography of rhizome’ 등으로 명명해 새롭게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다름의 지리학’에서는 ‘지역의 차이’를 ‘시선의 차이’로 전환해 환경, 풍수, 곡선에 대해 논의하는데, 시선의 차이를 통해 지역마다 다른 환경 문제‘들’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지역감정의 권력 도구로서 악용된 풍수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직선’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곡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같음의 지리학’에서는 지역적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는 표준화된 지리적 현상에 주목해 맥도날드, 고속도로, 화장실을 ‘일상’, ‘공간’,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고찰한다. 이어 ‘배치의 지리학’에서는 공간의 의미가 공간 구성 요소의 배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여성을 위한 아파트의 공간 배치가 오히려 여성을 배제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거나 이윤 창출 방법의 변화에 따른 백화점의 공간 배치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교회, 성당, 사찰의 공간 배치가 (불)신자에게 미치는 권위적 효과 등을 논의한다.

끝으로 ‘리좀의 지리학’에서는 전통적 지리학의 영토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야심찬 기획 아래, 근대화와 공간의 상관관계, 사용자(주체)의 차이에 따른 광장(廣場)의 의미 변동, 공간-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고찰한다.

“인간학으로서의 지리학을 지향”하는 필자의 이같은 논의는 “일상의 지리학은 지금 여기의 일상 공간에 새겨지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 속에서 (인간의-인용자) 삶을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인간과 공간의 긴밀한 상호 작용의 측면만을 살펴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일상’ 속에서 다시 묻고자 하는 필자의 작업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논의에서 ‘일상 공간’의 예로 제시된 공간들(또는 장소들) ― 환경, 풍수, 곡선 / 맥도날드, 고속도로, 화장실 / 아파트, 백화점, 교회, 성당, 사찰 / 근대(화), 광장, 5·18 광주민주화운동 ― 은, 필자의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자면, 이 책이라는 공간 속에서의 ‘같음’, ‘다름’, ‘배치’, ‘리좀’의 지리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바꿔 말해, 비록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일상 공간’의 범주가 넓다고 하더라고 필자가 논의를 위해 그것들을 같거나 다르게 배치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천착하는 (리좀의-인용자) 지리학”을 제창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각각의 명명법에 호응하는 일상 공간의 예를 효과적으로 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일상 공간’이 갖는 의미의 다양성마저 단순화된 감이 없지 않다. 논의를 위한 수단으로서 ‘일상 공간’을 배치할 것이 아니라, 필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듯이, 일상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타깝지만 이 책의 논의는 앞서 네 가지 명명법을 통해 새로운 지리학을 제안하는 데 있어서도 실패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이 책의 결론에서 “세상을 향해 지리학이 인간과 소통하기 시작했으며 사회와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서툴고 미숙한’ 저술 의도를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사람의 온기와 소통’의 공간을 고찰하는 ‘일상의 지리학’이 과연 필자의 바람대로 ‘미래의 지리학’이 될 지는 미지수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필자의 지리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세세히 논거를 들어 반박할 필요도 없이, 필자가 ‘일상의 지리학’을 지리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기에 급급해 하는 사이 기존의 지리학은 마치 인간과는 무관한 학문으로 폐기와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 지리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착한 이후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의 모든 행위와 집단, 공동체, 국가, 민족, 지역,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상)에 대해 살펴보는 데 중요한 개념과 방법, 관점 등을 제공해왔다. 즉, 지리학은, 여타 학문들이 그렇듯, 처음부터 인간에 관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일상의 공간 ― 인간의 삶과 문화의 변동을 반영하고 있는 곳이 일상 공간이라는 점에서 ― 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지리학적 관점의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공간과 장소에 대한, 그리고 그것들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접근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형이상학적인 공간론에서부터 기하학적 공간론까지 인간과 세계를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무수한 노력의 흔적들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암시하고 있듯이, 지리학이라는 단일 분과 학문의 폐쇄적 경계를 넘어 지리학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화학 등과의 학제적 연구 방법의 모색과 이를 통한 새로운 인간 이해의 관점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 공간’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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