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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사랑한다, 우리처럼
철학자들의 사랑 이야기
[153호] 2009년 03월 30일 (월) 박해용 전남대학교 철학과 강사

     
 
   
 

철학자들의 사랑 이야기는 적어도 한 가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철학자가 사랑에 대처하는 법은 특별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철학자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정신세계에서 찾는 색다른 류(類)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생활 세계의 감정이다. 그래서 철학과 사랑은 축복받기 어려운 부적절한 관계처럼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한 가지 은밀한 판단과 맞물려 있다. 철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생활에는 무능하고 턱없이 엄격하기만 해서 틀림없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는 판단이다.

철학사도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이러 저러한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키에르케고르다. 소위 “레기네 사건”으로 불리는 그의 연애이야기는 실존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사건이다. 그의 철학적 사유에서 핵심을 이루는 불안, 절망, 실존과 단독자등의 의미는 레기네 사건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키에르케고르의 치명적이지만 그러나 마침내 철학적으로 위대한 결실을 맺는 사랑은 그가 24살에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보다 열 살이 아래인 어린 소녀 레기네 올센을 만나서 첫눈에 반하였고, 3년을 기다려서 약혼을 한다. 그러나 그는 약혼한 날부터 깊은 회의와 고민에 빠진다.

 이 고민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서 약혼 1년 만에 파혼을 결심하고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고 묻는 약혼녀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결혼? 해야지. 내가 기운을 다 쓰고 늙어서 다시 젊어지기 위해서 젊은 여자가 필요할 때, 그 때 해야지”키에르케고르는 “악당으로, 가능하면 가장 야비한 악당으로 보여서” 약혼녀가 스스로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 요즘 말로 ‘나쁜 남자’ 역을 한 것이다.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행위에 대한 불안과 책임 그리고 부모에게서 비롯된 원죄의식과 우울증이 파혼 결단의 원인이다. “이 편지를 쓴 남자를 잊어 주시오.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었던 남자를 용서해 주시오” 하는 편지와 함께 파혼을 선언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고통은 약혼녀가 파혼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자 더욱 커져서, 그는 레기네를 정절이 없는 여자라고 비난까지 한다.

레기네는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됨으로써 마침내 키에르케고르의 영원한 동반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삶의 단상』이라는 제목보다 키에르케고르의 심정에 더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의 고통은 책의 제목에서부터 강렬하게 나타난다. 그 결과 “레기네 사건”은 위대한 철학적 사건이 되었다.

니체는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로 비유된다. 그러나 그의 망치는 사랑에 관해서만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대신 니체는 스스로 채찍 맞는 것을 택하였다. 여성에 관하여서 그가 한 유명한 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노파를 통해서 표현된다. 노파는 “여자들에게 가려고? 그렇다면 회초리를 잊지 마라” 라고 말한다. 그러나 니체가 루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면 이 회초리의 쓰임새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37살에 겨우 21살이던 러시아 출신의 루 살로메를 만나서 요즘말로 첫눈에 그대로 “꽂히고” 말았다.

그 순간 니체는 루에게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어느 행성에서 떨어져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일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달콤한, 너무나 달콤한” 말이 루 살로메에게 그다지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존심 강한 니체는 직접 청혼을 하지 못하고 친구 폴 레를 시켜서 대신하게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이 친구 역시 니체 못지않게 루에게 반했던 터라 자신의 사랑까지 고백하고 나선 것이다.
불행한 시작은 불행한 결과는 낳는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좋다는 격언을 남긴다.
금욕주의를 비웃고 육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니체는 웬일인지 루에게는 오로지 순수한 정신의 아름다움만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루의 관능적인 매력을 말할 때, 니체는 루의 지적 매력만을 강조하였다. 마침내 니체는 루가 “모든 여성 가운데 가장 지적인 여성이다”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유일한 여성제자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천재 니체의 제자가 될 마음이 없던 루에게 니체는 그저 “독일적인 교수”였을 뿐이다. 루는 니체의 사랑 대신 “정신적인 공동체적 관계”를 제안하고,  니체, 폴 레, 루 살로메 이 세 사람은 소위 “철학적 관계”라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관계를 맺는다.

이 철학적 관계는 루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자 폭발한 니체의 질투로 깨어지고, 가장 지성적이라던 루는 일시에 ‘고양이 같은 이기주의’로 ‘인간관계를 다른 쾌락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천박한 여성으로 전락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적 관계를 한 장의 기발한 사진으로 남김으로써, 루 살로메는 니체가 ‘초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기꺼이 수레를 끄는 한 남자라는 물증을 남겼다. 사진 속의 니체는 폴 레와 함께 말처럼 수레 앞머리에 서있고, 루 살로메는 수레 위에서 손에 채찍을 들고 서 있다. 채찍질 당하는 니체여! 그리고 니체는 마침내 채찍질의 고통을 통해서 “결혼한 철학자는 희극에나 속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지만, 이 외침 속에서 니체의 굴욕은 더욱 선명해진다.

최고의 순애보는 존 스튜어트 밀의 몫이다. 밀은 해리엇 테일러라는 여성을 21년을 기다렸다. 25살이던 밀이 해리엇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유부녀에다 어머니였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들의 사랑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이었고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교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편의 죽음으로 해리엇이 독신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써 결혼을 하고 부부로서 살았다.

 7년 후 아내 해리엇이 죽자, 밀은 아내가 묻힌 곳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고 살다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밀은 자신의 사상이 해리엇과의 공동의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특히 해리엇이 미친 결정적인 영향은 밀의 자유론의 핵심이 되는 자유사상과 여성해방적 관점에서 잘 나타난다. 밀은 한 여성을 사랑했을 뿐만이 아니라 존경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밀과는 달리 사르트르는 소위 계약결혼으로 ‘개방적 관계’를 통해서 순애보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사랑의 자유를 선택한다.

이렇게 보면, 철학자들의 사랑 또한 그들의 삶의 행위이고 표현이라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들은 사랑, 욕망, 질투, 증오 등을 부단히 그리고 헛되이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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