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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장래에 대한 어두운 묵시록
[ReCLASSIC]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153호] 2009년 03월 30일 (월) 김철수 전주대 교양학부 교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과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혹은 친구와 연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과 살상행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살인이라 일컬어지는 자살의 소식들 때문에 현대인들은 스스로 삶에 대한 불안과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인간 흉포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인간은 날 때부터 흉포함을 내재한 채로 태어났을까? 아니면 선한 본성이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타락하게 된 것일까?  

오늘 되돌아보고자 하는 소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1954)의 저자인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에게도 오늘날 우리와 유사한 고민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해군 장교로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나치의 잔인성을 체험하고, 또 13년간에 걸쳐 교사 생활을 했던 골딩은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난폭성을 폭로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핵전쟁의 위협을 피하여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던 영국의 어린 학생들이,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여 무인도에 고립된 처지가 된다. 그 후 아이들은 그간 교육받은 경험을 근거로 “마음을 합하여” 무인도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대장도 선출하고, 지나가는 배나 비행기가 볼 수 있도록 불도 지피고, 먹을 것도 구하고, 바닷가에서 수영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이 모든 일이 그저 배운 대로 잘 이루어지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그들은 대장이 되고자 하는 욕망, 굶주림과 추위 등을 비롯한 일신상의 곤란, 그리고 어둠과 괴물 같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실체에 대한 공포 등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애초에 맘먹었던 ‘점잖은’ 생활은 점점 불가능해 지고 처음에는 지상낙원으로 보였던 곳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아이들은 문명인으로서의 체면과 권위를 강조하며 질서를 지켜 합리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고자 하는 랠프(Ralph)라는 소년이 이끄는 무리와 본능적 욕구를 먼저 해결하고자 하는 잭(Jack)을 우두머리로 하는 무리로 양분되어 심한 갈등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랠프 일행이 잭 일행에게 심하게 밀리게 되고 그러한 갈등의 결과는 살인과 방화 그리고 약탈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된다.

비록 한계상황에 처한 일단의 어린 학생들의 삶의 양상을 묘사한 소설이지만, 결국 이 작품은 성인들을 위한 우화요 알레고리로서 인류의 장래에 대한 지극히 어두운 묵시록이다. 작은 악마들로 변한 잭 일당에 의해서 섬이 초토화되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랠프가 지나간 순수의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무렵, 하얀 제복을 입은 해군 장교가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사악한 본성을 지닌 인간을 구원해줄 이는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의 초월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해군 장교 역시 타락한 성인이며, 그가 그 아이들을 구원하여 데리고 가고자 하는 곳 역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 중의 세계가 아닌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가도 가도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우울한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암울한 결말 속에도 봄볕 같은 희망이 있게 마련이다. 아니 그런 희망을 꼭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성선설(性善說)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맹자(孟子)는 “풍년에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선량하지만, 흉년에는 대부분 포악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천부적인 그들의 본바탕이 악해서가 아니라 불리한 환경 탓에 자신의 본심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본시 인간은 남의 아픔을 그저 보아 넘기지 못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가진 선한 성품의 소유자인데, 물질에 대한 욕심(物慾陷溺)과 불리한 환경(勢), 그리고 낮 시간의 번다함을 다스릴 수 있는 밤기운(夜) 등을 다스리지 못하여 그 선한 성품을 스스로 포기하게 될 때(放心) 그 선한 본성을 잃고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 본래의 선한 성품에 대한 긍정적 신뢰와 “존심양성(存心養性)”, “전심치지(專心致知)”, “양호연지기(養浩然之氣)”, “반구제기(反求諸己)”, “호선(好)”와 “중용지행(中庸之行)” 등 외부적 자극 및 그러한 자극에 대한 적극적인 개인의 반성과 수양만이 본성의 상실과 타락을 막고 그 선한 본성을 확충시킬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설탕과 크림을 넣은 콘플레이크 한 그릇을 먹었다. 그리고 책이 있었다.- 책은 침대 곁의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그가 보고 난 뒤 제자리에 갖다 꽂지 않아서 맨 위의 두 세권은 함께 포개져서 자빠져 있었다. 책은 책장이 너덜너덜했고 닳아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의 기억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어린이를 위한 매머드 이야기』라는 책의 무게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영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즐겁고 정다웠다.

섬 생활 초기에 랠프의 기억 속에 언뜻 스쳐간 지나간 좋은 시절에 대한 기억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 속에서 발견한 인의예지의 사단(四端)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선한 본성과 긍정적 사고의 씨앗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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