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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홀로코스트를 이용하는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속에서 작동하는 기억의 정치
[153호] 2009년 03월 30일 (월) 안영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난 2월20일 연합뉴스에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최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를 부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영국의 극보수주의 성직자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에 대해 추방 명령을 내렸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600만 명이 아니라 20~30만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학살에 대한 선택적 기억

우리는 리처드 윌리엄슨과 관련된 기사를 통해 몇 가지를 얘기해 볼 수 있다. 먼저 홀로코스트를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이라고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학살의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했던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놓고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 하나는 독일의 학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등이 함께 살해되었음에도 ‘독일의 학살=유대인 학살’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라는 말이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말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시 제기되는 것이 학살의 정치적 지위 문제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미국과 유엔이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행했고 이를 통해 1백 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엔에게는 히틀러·나치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붙거나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를 두고 학살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3천여 명이 사망한 9·11사건을 놓고는 ‘테러’ ‘비극’과 같은 말들이 쉽게 사용된다. 희생자의 수나 사회에 미친 영향으로 보면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가 훨씬 심각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경우는 비극의 지위를 얻기는커녕 기억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해 9·11은 인류 역사의 중대 사건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 누가, 어떤 동기로 학살을 기억하고, 그 기억의 주체가 어떤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꼭 기억해야만 하는 학살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또는 기억하지 말아야 할 학살로 나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유대인 학살을 비난하는데, 이들이 비난하는 것은 ① 유대인 ‘학살’일까? 아니면 ② ‘유대인’ 학살일까? ①의 경우는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모든 학살을 비난하는 것이 될 것이고 ②의 경우는 학살도 문제지만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것에 더욱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을 비난하는 많은 경우는 ②의 경우로, 유대인 학살에 비해 다른 학살은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유대인 학살은 놀랍고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학살 관련자들은 처벌받아야 하고 관련 국가들은 배상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미국이 베트남·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벌였던 학살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과거에 있었던 단순 사건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미국에게 학살은 수용할 수 없는 학살과 수용 가능한 학살로 자의적으로 나뉘는 것이다.
앞의 기사에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리처드 윌리엄슨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학살에 개입한 것도 아니고 학살에 관해 다른 주장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추방의 이유가 된 것이다. 그만큼 유대인 학살에 관한 말은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정치적 지위를 갖고 있다. 마치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 신 앞에 머리를 숙이거나 신과 대화를 할 수는 있어도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지위와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도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말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벌인 학살도 과연 유대인 학살과 같은 평가를 받을까?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은 학살의 주체가 유럽인이라는 공통점과 학살의 대상이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이라는 차이점을 안고 있다. 유럽인(백인)이 유럽에서 유럽인(백인)을 죽인 것과 유럽인(백인)이 아프리카에서 비유럽인(비백인)을 죽인 것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인이 유럽인을 학살한 것은 기억해야 하고, 반성해야 하고, 처벌해야 하지만 유럽인이 비유럽인을 죽인 것은 기억할 필요도 반성할 필요도 없는 사건이 된다. 학살을 대하는 태도에도 인종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다.


학살당한 불쌍한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노동조합 본부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이 황급히 부상자를 대피시키고 있다.  
 

 

바르샤바처럼 암스테르담에서도, 부다페스트에서처럼 베를린에서도 사람들과 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자신들의 추방과 학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추방자들로부터 돈을 인수하고, 소개된 아파트를 계산하고, 유대인을 체포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들을 기차에 태우도록 경찰력을 제공하며, 마침내 마지막 행동으로 유대인 공동체 자산의 최종 약탈을 위해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이르기까지 유대인 요원들은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가운데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럽 곳곳에 있던 유대인과 유럽인이 독일에게 협력했다. 또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인구수를 늘리려고 했고, 이를 위해 독일과 유럽 지역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에 대해 협의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가려 하자, 시오니스트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유대인들이 미국이 아닌 팔레스타인으로 가게 만들었다. 즉, 유대인 학살은 독일의 주도하에 여러 유럽인과 유럽 국가들이 협력하여 벌인 일이고, 시오니스트들은 이를 발판으로 유대인 학살을 국가 건설에 필수적인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삼은 것이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아랍인의 90% 가량을 학살·추방하면서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1948년 5월14일 발표한 건국 선언문에서 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유대인에게 조국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살과 학대를 피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테오도르 헤르츨도 ‘유대인 국가’라는 글에서 국가 건설 지역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 아르헨티나를 제안했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설한 것은 팔레스타인이어야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점령 가능했기 때문이었고, 더 나아가 아랍인들을 추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살의 생존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던 것도 아니다.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 국가를 만들겠다고 팔레스타인에서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대인 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건국에 필요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내는데도 유대인 학살은 정치 선전의 유용한 도구였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 팽배했던 ‘학살당한 불쌍한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라는 죄의식과 동정심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학살은 내부적으로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유대인들 전체의 고통으로, 말하자면 민족적으로 추상화된 고통’이 되어 이스라엘 시민의 정서를 통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학살을 명분으로 국가 정체성을 세우려고 하면서도 정작 독일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생존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생존자들이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홀로코스트 관련 단체의 간부들이 배상금을 이용해 재산 축적에 나서고 있다는 비난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은 유대인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유대인 학살을 벌였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반이스라엘 세력들이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스라엘, 그들의 자기 정당화

외부적으로는 유대인 학살이 이스라엘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이스라엘을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 것이다.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놓고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채 홀로 떠 있는 섬’,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 자신을 방어한 유대인들’과 같은 말을 쓰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시오니스트들은 이런 말들을 과거 유대인 학살과 연결하면서 자신을 위기에 빠진 희생자 또는 피해자로 만든다. 그런데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건국 때부터 지금까지 군사력으로 다른 국가나 민중들을 억압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다. 미국에서는 대소련 전진기지인 서독의 입장을 생각해서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 가서야 유대인 학살에 관한 논의와 배상 압력, 박물관 건설 등이 본격화 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이 필요했던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군사·재정 지원을 정당화 하는데 학살의 희생자 이스라엘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유대인 학살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정당화하는 두 번째 방법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회운동이나 지식인들에 대한 반유대주의 공세로, 반이스라엘=반유대주의로 몰아가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에서 출판된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내용을 가지고 ‘홀로코스트 이후 60년 이상이 흘렀지만 반유대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 책을 반유대주의의 사례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미국을 비판하면서 ‘모든 미국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와 같은 꼬리표를 달지 않던 사람들도 이스라엘을 비판할 때는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라는 식의 꼬리표를 다는 것 또한 반유대주의 공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반유대주의 공세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 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테러를 막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콘크리트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 12월27일부터 22일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 이름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스라엘 국민들은 수 년 동안 매일 가자지구로부터의 공격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의 테러 시설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통하여 자국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 권리인 자위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단순하게 사망자 통계만 봐도 가자 학살 기간에 13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는 동안 1,3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
독일은 유대인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유대인 학살을 벌였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반이스라엘 세력들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정당화 하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학살의 피해자가 아니라 학살의 가해자로서, 나치 독일의 또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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