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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수대인의 책읽기 6] 역사의 상처
[152호] 2008년 12월 15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장편소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이재영 옮김

 
 
두 편의 중요한 소설이 나왔다.

 

이 소설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와 기억은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며, 봉합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흉터와도 같다고. 상처를 꿰맨 자리는 나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내 격한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바로 이 터진 곳을 봉합하려 하나 때론 터진 그곳에서 이야기의 틈새에 맺혀있던 울혈(鬱血)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는 애도의 방식으로 그 상처와 결별하려고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는 상처에 대한 그런 애도의 몸짓이 도대체 가능한지를 묻는다. 역사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은 글쓰기의 (불)가능성과 어떤 식으로든 만나게 되어있다.

김연수의 장편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반 동만주 항일유격근거지에서 일어났던 ‘민생단 사건’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른바 민생단 사건을 재현한 역사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라는 잔혹극의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웠고 그 열정으로 소각(燒却)되어 빼와 재만 남긴 청년들의 내밀한 이야기다.

『밤은 노래한다』에서 민생단 사건은 일제의 앞잡이로 의심받은 조선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민생단’으로 간주해 수백 명을 처형했던 역사적 마녀사냥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렇지만 좌익 내부의 테러며, 혁명동지 간의 린치라는 점에서 민생단 사건은 혁명의 기관차 끝자락에 올라탔던 작가 김연수(1970) 세대가 체험했던 혼돈스런 열정을 상연하기에 맞춤한 무대로 변신한다.

아키비스트(Archivist)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는 바로 그런 역사에 참여했던 청춘들의 열정에 대한 해부학이다. 열정의 불길은 주인공의 사랑과 동지의 배신이라는 가면을 썼다 벗는 과정을 거듭하며 격하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죽은 연인에 대한 복수를 꿈꿨던 주인공이 복수의 무의미함을 깨달으면서 잦아든다.

그 열정이란 실은 사랑과 배신이 정반합(正反合)처럼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의 다른 이름일 것이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역사를 만든다. 역사란 이처럼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목적을 완수해 내가는 교활하고도 무자비한 존재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역사는 최근의 수많은 경성이야기의 속화된 버전에서 볼 수 있듯 판타지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이런 사태에서 볼 때, 김연수의 소설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 불편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그런 역사가 서둘러 의심받고 밀쳐지는 지금 이 현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 역사를 소재나 무대로만 취급하는 사태가 역사의 참담한 진실은 아닐까도 싶다.

역사는 상처를 주고, 소설은 그 상처에 칼과 붕대를 댄다. 김연수의 외과 수술적 글쓰기가 서투를 때가 더러 있다. 상처에 칼을 대는 과정이 아니라, 붕대를 두르는 결말에서 그러하다. 소설의 결미에서 복수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총을 내려놓는 주인공의 제스처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복수는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종결보다는 아직 해부해야 할 열정이 남아있기에 유의미하다. 소설은 결말을 쉬이 낼 수 있겠지만, 역사에게 쉬운 결말이란 도대체 없기에.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독일작가 W. G.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읽는다면, 소설이든 삶이든 그것은 중단 없는 결말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반대로 고향을 잊고 싶은 작중인물들에게 편안한 여생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생의 종착역에서 느닷없이 자살하거나 의도적으로 기억을 삭제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타향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왜 그랬을까.

돌아갈 곳 없는 저 평범한 이웃들의 이면에 자리 잡은 심연 가득한 삶을 참을성 있는 서술자가 주의 깊게 듣고, 메모하고, 되새기고 또 그들이 돌아갈 수 없었던 바로 그곳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거기서 만남과 헤어짐, 고향과 망향,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 자연과 역사가 (불)협화음의 울림을 오래도록 남기는 저 이야기의 여정들이 참으로 아프게도 펼쳐진다.

또 소설 곳곳에 절묘하게 배치된 사진들은 죽은 자들과 장소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언하며, 거기서 대부분이 유태인인 작중인물들이 2차 대전 전후로 겪었던 소름끼치는 역사의 비명이 들려온다.

이 소설에서도 역사는 상처를 주지만, 제발트의 글쓰기는 역사의 상처에 어설프게 칼을 대기보다는 그 주위를 무서운 침묵으로 끝없이 공전한다. 결말은 있되, 중단되지 않은 그것이 역사다. 또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소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고문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아픈 살이다.

그래도 두 소설을 읽으면 단 하나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소설의 작중인물들, 곧 나라를 잃고 흩어진 사람들이란 오디세우스처럼 돌아가야 할, 그러나 그곳이 존재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타카를 품고 죽을 때까지 떠돌아야하는 존재구나 하는. 마음 한구석이 갑자기 서늘해진다.

복도훈
(국어국문학과 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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