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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읽기]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도덕적 허무주의와 역사진화론의 산물
[152호] 2008년 12월 15일 (월) 정상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처음에 2권으로 출간되었다. 1권은 1925년 7월 18일, 2권은 1926년 12월 11일에 출판되었다. 1930년에는 2권을 통합해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던 1933년 12월까지 1500만 부가 팔렸다. 판매량은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던 1939년에 500만부를 돌파했고 나치 정권의 전성기였던 1943년까지 1천만 부 이상이 보급되었다. 나치즘 대두를 근심스럽게 지켜보던 윈스턴 처칠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신앙과 전쟁의 새로운 코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사상과 정책의 기본 골자를 파악하는 데는 2권보다 1권이 중요하다. 1권의 내용은 국가사회주의 대내정책에 중심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대외정책에 놓여 있었다. 1918년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당시 독일인들에게 1914년 이전의 국경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히틀러의 주장은 상당한 타당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자국의 국경선이 침범당한 적이 없음에도 베르사유 조약에서 너무 가혹한 처분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베르사유 체제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히틀러만의 주장은 아니었고 당시 정치가들도 베르사유체제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정치가가 1923년 수상이 되어 독일의 외교정책을 주도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Stresemann)이었다. 슈트레제만은 패전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시 강대국의 서열에 복귀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기본 골자로 삼았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이러한 슈트레제만의 대외정책에서 출발한다.

히틀러는 독일의 강대국 지위의 회복을 넘어서 유럽의 패권장악으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영토획득 전쟁과 복수전을 내세워서 러시아에 대한 전쟁과 프랑스의 점령을 주장했다. 히틀러는 러시아에 대한 전쟁의 명분을 반볼세비즘에서 찾았다. 그리고 반볼세비즘은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원로들이 대부분 유태인이라는 사실에 착안해서 반유태주의를 도입했다.

이리하여 히틀러는 『나의 투쟁』 1권에서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로 변질시켰고 계급투쟁 대신에 인종투쟁을 주장했다. 그리고 인종투쟁에서 독일 노동자 계층의 승리를 역설했다. 19세기 후반 이래로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서 이윤을 얻고 있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적개심은 반유태주의로 나타나 있었다. 막스 베버 조차도 이러한 고리대금업을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 독일 여론에 나타난 반유태주의를 히틀러가 이용한 것이다.

또한, 히틀러의 사회주의는 당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채택되고 있었던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체제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구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신화적 요소들을 도입해서 독일적 국가체제인 게르만적 총통국가력의 창설을 주장했다.

러시아에 대한 영토획득 전쟁이라는 대외정책은 대내정치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생활공간(neue Lebensraum)의 창설을 제시했다. 프랑스에 대한 전쟁과 지배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대한 보복이었고 1923년 초 프랑스의 루르 지역 점령에 항의했던 독일 국민의 여론을 대변했다.

이를 위해서 히틀러는 영국과 파시즘을 성립시킨 이탈리아와 동맹을 주장했다. 히틀러의 대외정책의 최종적인 목표는 독일의 유럽 지배였다.

『나의 투쟁』 2권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의 선전강령이다. 이 책에서는 1924년까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역사를 언급했고 대중심리학을 동원해서 총통력신화를 강조했다. 히틀러는 고대 게르만의 오딘(Odin) 신화에서 총통의 기원을 도출했다.

『나의 투쟁』 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먼저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나타났었던 도덕적 허무주의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군주정의 붕괴와 의회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는 이전의 군주정과 같은 정치적 정통성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군소정당이 난립했고 연립정권이 형성되어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 발전을 통한 황금만능주의의 유행은 일반 대중들에게 도덕적 허무주의를 자아냈다. 이러한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던 일반 대중들에게 새로운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을 히틀러가 제시했던 것이다.

두 번째 사상적 기반으로는 역사진화론(Geschichts darwinsm)을 꼽을 수 있다. 이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을 기본적 사고로 해서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세 번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부르주아적 시민사회의 붕괴와 대중사회의 등장을 통해서 나타난 대중심리학이다. 이는 히틀러의 선전을 담당했던 괴벨스에 의해서 계승되고 총통신화를 선전하는 데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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