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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서평]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현미경과 청진기 같은 소설
[152호] 2008년 12월 15일 (월) 김덕희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안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잦다. 사는 꼴은 비슷한데 왜 나만 바쁜 건지, 작은 열패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주문을 외듯 저 사람의 미래보단 내 미래가 더 나을 거라고 중얼거려 본다. 오래 전부터 쭉 그래 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 역시 고작 여기에 서 있다.  

대체 어디쯤 닿아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일까. 위기는 끊임없이 내게만 찾아오고, 희망은 늘 타인의 삶에서만 엿보이고, 그럼에도 서로에게 올-인을 종용하는 이곳, 우리는 언제나 지구 위에 있었다. 그리고 중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여기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저주다.

윤고은의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은 달이 하나둘씩 증식한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설정한 작품으로 세간에 잘 알려졌다. 달이 늘어날 때마다 지구의 질서는 무너진다. 그것을 작가는 ‘발작’이라고 말한다. 투신자살률이 수직상승선을 그리고 가출과 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다.

질병 발병률도 증가하고 테러는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된다. 달의 증식에 의한 발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토록 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돈벌이가 될 만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달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달의 면적을 나누어 지구인들에게 팔아넘기려는 자본주의적 발상(발작)이 그것이다. 놀랍고도 예리한 작가적 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달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급기야 여섯 개까지 늘어나니 발작이 일어나지 않고 배길까? 달이 하나만 있어도 이 지구는 밀물과 썰물이 일어날 정도로 위태롭지 않은가. 이 작품을 그저 달의 증식이 지구인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고찰한 보고서로만 읽을 수는 없다. 그만한 상상력만으로도 이 소설이 얼마든지 새롭고 유쾌하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의 처음 기획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 자신의 소외와 상처를 되씹었을 때만 풍기던 이 씁쓸한 뒷맛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과연 이것이 나 혼자만의 독서경험일까. 작품 전반에 걸쳐 단 한 줄의 문장에서도 신파조의 강요는 없었다. 그러나 입술을 꾹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비장함은 분명히 있다.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는 세상의 발작을 그냥 봐 넘기지 않게끔 하는 선동이 이 소설에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을 증식하는 달이 아닌 지구의 중력에 초점을 맞추고 한 번 더 읽어 보면 훨씬 풍성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그래서 제목이 무중력 증후군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달이 늘어난다고 능청을 떨고 있지만, 사실은 중력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달의 증식에 따른 전 지구적 발작에 대해서는 마치 먼 외계에서 고배율 망원경으로 관찰하듯 철저히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러나 중력을 잃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의 발이 이 땅에 단단히 붙어 있는 것인지, 어느 순간 붕 하고 떠올라 끝내 증발해버리지나 않을지 하는, 초조하고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진다.

작가가 애틋하게 바라본 인물은 주인공 노시보를 비롯한 아빠, 형, 엄마. 그리고 소설가 친구 구보와 노시보의 주변을 맴도는 기자 퓰리처 등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중력을 찾아 치열한 모험을 겪는다.

『무중력 증후군』에서 중력의 개념이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신념과 비슷한 것으로 읽히는 순간, 시종일관 유쾌하던 독서의 시간으로 무거운 정적이 찾아올 것이다. 중력은 내가 오해했던 대로 저주나 천형이 아니라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잠시 책 날개에 적힌 글을 읽어보자. “허공에도 눈이 있고 적막 속에도 귀가 있다고 믿는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당신의 이상한 여행이 시작된다. 허공을 겨눈 현미경, 적막 틈으로 내미는 청진기는 덤이다.” 나는 이 말을, 허공에도 볼 것이 있고 적막 속에도 들을 것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허공을 겨눈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자가 증식 직전에 몸부림을 치는 내가 보인다. 나는 노시보고, 시보의 형이며 엄마며 아빠다. 물론 소설가 친구일 수도 퓰리처일 수도 있다. 적막 속에 들이댄 청진기를 들어보자. 세상이 질러대는 아우성이 와글와글 들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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