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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쌍수대인의 책읽기 5]
[151호] 2008년 10월 20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뛰어난 소설가나 시인이 뛰어난 비평가인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런데 반대로 뛰어난 비평가가 뛰어난 소설가이거나 시인인 경우는 별로 없다. 당연한 말이다. 당연한 말인데도 말하고 나니 왠지 비평가가 부조리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명색이 비평가도 문학하는 사람인데.

비평은 시와 소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류문학이거나 숫제 문학이 아니다? 예전에 나왔으나 지금은 사라진 국어사전은 작가들을 또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시인? 시를 잘 짓는 사람. 소설가? 소설을 퍽 잘 쓰는 사람. 뭔가 부족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정의지만, 잘 생각하면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시인은 시를 잘 지어야 하고 소설가는 소설을 잘 써야 하니까. 그럼 비평가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품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비평을 썩 잘 쓰는 사람은 결코 아닌 것이다.

비평은 아무리 용을 써도 문학이 아니며, 비평가는 문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사전의 해당항목을 집필한 필자는 틀림없이 분명 비평의 본질을 꿰뚫는 천재거나 비평의 ‘ㅂ’자도 모르는 바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런데 비평이 문학인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번에 읽은 세 소설가의 비평에세이가 그러하다. 밀란 쿤데라(1928~)의 『커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만리장성과 책들』,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왜 고전을 읽는가』가 각각 그 작가들이고 그 책들이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지만 반가운 만큼이나 야속하기도 하다(쿤데라의 팬들은 그의 소설을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는 걸까!). 만일 꿈에서 흘끗 보았던 황금이 깨어나고 보니 당신의 침대 옆에 실제로 놓여있다면? 보르헤스의 책은 그런 황금을 닮았다.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진화하는 말하는 종족 등 온갖 환상적 우주를 엿보려면 칼비노의 책 아무데를 펼치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이 에세이집의 주인공들은 누구던가. 각각 우뚝 서 있어 남들과의 비교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불후의 문학적 개성들이 아닌가. 비교를 거부한다는 점만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의 비평은 문학이다. 아니, 그들 덕분에 비평도 문학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 책들은 두 방향에서 읽을 수 있다. 먼저, 독자들은 이 책들과 더불어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에 이르는 서구문학의 뛰어난 고전들에 대한 흥미로운 독서를 대리 체험할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 후, 주인공 오디세이아가 모진 방랑 끝에 고향인 이타카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칼비노는 『오디세이아』안에 무수한 『오디세이아』가 있다고 말한다. 가령 『오디세이아』의 한 대목에서 생전의 호메로스마냥 눈먼 가인(歌人)이 방랑의 노래를 들려주자, 오디세이는 묵혀놨던 자신의 방랑에 대해 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니까 영화로 치자면, 호메로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던 것이며, 『오디세이아』의 진정한 저자는 호메로스라기보다는 오디세이 그 자신이 되는 셈이다. 이런 대목들은 비단 칼비노뿐만 아니라 세 권의 에세이집에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다. 아무데나 펴보시라!

 다음으로, 이 에세이들을 작가 자신이 쓴 소설들의 한 대목으로 보다 전문적으로 읽는 방법이다. 세 소설가의 비평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한 성찰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에세이적 성찰은 그들의 훌륭한 소설 안에 상당수 변주되어 있다. 이 세 소설가는 비평적 성찰이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임을 증명한 작가들이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비평적 성찰을 소설 안에서 비평이나 논문을 쓴다거나 현학과 박식을 늘어놓는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소설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소설일 수 있는가, 소설을 통해 인간 실존은 어느 영역까지 삶의 지평을 넓히는가라는 질문을 좀 더 지적으로 그들의 소설 안에서 던진다는 것이다. 그 외에 이 작가들의 공통점이란 없다. 반복하지만, 이 위대한 문학적 개성들은 비교를 불허하므로. 그래도 이들의 문학적 개성은 각각이 흥미롭다. 취향이 매우 까다로운 쿤데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은 대략 스무 권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만 사숙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박식한 도서관 작가 보르헤스는 죽기 직전까지 책 한권을 더 읽지 못해 슬퍼하는 인간의 숙명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칼비노는 보다 겸허해서 보르헤스와 쿤데라에 대한 존경스러운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세 권의 에세이는 모두 문학으로만 이루어진 하나의 대체 역사, 바벨의 도서관, 박물지적 우주다. 그리고 세 소설가는 각각의 문턱에서 입장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문학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복도훈 (국어국문학과 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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