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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희노애락
왜, 우리는 커피에 매료되었을까?
[151호] 2008년 10월 20일 (월) 오두진 /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저자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시는 음료로서뿐 아니라 그 시대 문화를 지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1896년 제국주의의 각축 속에 고종은 궁궐을 뒤로 두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이른바 아관파천. 그 후 1년 동안 고종은 국사를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리했고 바로 이때 러시아 웨벨 공사의 처형인 손탁이 고종에게 커피를 처음 소개한다. 커피는 한일합방을 거치며 일부 특권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 중심지는 단연 다방이다. 명동과 충무로 종로 일대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다방은 아직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있었다. 드나드는 손님들은 지체 높은 관료층이거나 개화된 지식인들이었다.

 커피와 다방은 어두웠던 일본강점기에 있어 예술인들에게는 억눌린 자아의식의 정신적 해방구 역할을 하였다. 그 중심에는 시인 이상이 있었는데 그는 일제에 의해 억압된 내적 감정을 당시로선 삶을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던 다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보고자 서울 광교에 '식스 나인'이라는 다방을 연다. 관할관청인 종로경찰서는 이 명칭의 의미를 모르고 허가를 내주었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소동을 빚기도 하였다.

 해방에 뒤이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다방을 중심으로 일부 계층이 누리던 커피 문화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군들에게 지급되던 야전용 봉지커피와 인스턴트커피가 구호물자로 시중에 대량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서야 비로소 일반인들은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전이 고급 취향의 원두커피 시대였다면 전쟁을 기점으로 인스턴트커피가 주류를 이룬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혼란 속에서도 다방은 일반 대중에게 정착되어 가며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정작 커피의 물량수급과 유통경로는 갖가지 물의를 빚게 되었고 정부는 커피의 유통질서를 양성화시킬 목적으로 국내 커피 메이커의 설립을 승인하게 된다. 동서식품의 창립으로 국내 생산기반까지 갖춘 커피는 그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마침내 일반인들도 즐기는 기호식품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커피의 확산은 대중문화까지 영향을 미쳤다. 김추자, 펄시스터즈, 이장희 같은 당대 최고 가수들이 커피를 소재로 노래를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 한 곡 ‘커피 한 잔’의 히트는 기호품으로서의 커피가 완벽히 정착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인스턴트커피의 확산으로 이제 집안에서도 커피를 손쉽게 마실 수 있게 됐다. 다방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이즈음 등장한 것이 바로 음악다방이다. 이곳에서는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커피 자판기의 등장으로 다방과 가정에서뿐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자 커피는 젊은 취향에 맞춰 스타벅스와 테이크아웃이라는 키워드를 남기며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게 된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시는 음료로서뿐 아니라 그 시대 문화를 지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다방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시로 읊어지고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게 커피는 우리 생활에 밀착됐고 필수품으로 정착되었다.

커피는 더는 단순하지 않다. 향이 좋아 커피다운 커피, 그 한 잔의 커피는 곧 문화이며 생활이고 더 나아가 철학이기 때문이다. 

오두진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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