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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한국연구재단 출범, 학문 후속세대들의 미래는
[151호] 2008년 10월 20일 (월) 황복수 편집위원 rainmaker@hanmail.net

  오늘날 우리는 지구화된 환경을 일컬을 때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은 기존의 자유주의보다는 무언가 개선되고 발전된 느낌의 뉘앙스를 풍긴다. 인문학자 이명원은 언제부터인가 ‘해고의 자유’라는 표현을 ‘노동유연성’으로 명명하고 있음을 한 예로 지적하며, 이는 일종의 명명-프레임의 효과이고 담론이 판타지라고 말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절대자본주의(철학자 김상봉이 처음으로 표현)’라는 말이 ‘신자유주의라는 말보다 더욱 적확함을 역설하고 있다.
절대자본주의는 시장만능주의의 지구화를 의미한다. 즉, 지식과 정보를 포함한 모든 지적 영역들조차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획득과 재생산의 원리로 환원된다. 물론 지성의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졌던 대학사회에서도 절대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국가는 ‘학술진흥재단’이라는 일종의 팬옵티콘(panopticon)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연구자에게 또는 학문후속세대에게 인풋(Input)하면 반드시 아웃풋(output) 한다는 근대적 논리를 강요하여 왔다. 절대자본주의의 힘은 생각보다 대학사회를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학부생들은 전공과목 보다는 취직에 도움이 되는 토익·토플과 같은 영어성적증과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한다. 또한 학부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원생 이상 연구자들 역시 본의 아니게 연구의 깊이를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은 따내고 보자는 보여주기 식의 프로포절(proposal)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미 만연된 사실이다. 

학진, 무엇이 문제인가?

학술진흥재단 입장에서 보자면 체계적으로 구성된 프로포절(proposal)을 제출한 연구자에게 연구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은 학술진흥재단의 수혜를 받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연구자’임과 동시에 ‘교육자’라는 점이다. 훌륭한 교육자는 논문발표를 통해 학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책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학문을 해야 하는 참 진리를 가르칠 책무도 있다. 그렇다면 학문의 참 진리는 무엇인가. 각각의 학문마다 연구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에는 모든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 즉 인문주의에 그 귀결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을 참 진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연구 활동을 통해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는 선생님도 필요하지만 명쾌한 강의를 하는 선생님, 올바른 언행으로 몸소 도덕적인 주체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절대자본주의의 시스템 하에서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술진흥재단의 시스템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문주의를 가려낼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직 잘 작성된 프로포절(proposal)만으로 학자의 연구할 자격과 가치를 부여할 뿐이다. 결국 많은 논문들을 ‘등재지’에 발표한 연구자만이 학진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학문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견고해지는 팬옵티콘(panopticon)

 지식사회는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해 학술진흥재단에 종속된 지식담론만을 생산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학자로서의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초학문은 절대자본주의의 무덤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 더욱더 가속화 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되면서 기존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으로 분리되어 있던 연구 관리기관들이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하여 설립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을 위한 법안을 지난 10월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10월 8일 밝혔다. 또한 정부는 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됨에 따라 그동안 여러 곳으로 분산된 연구관리기관들의 연구개발사업 지원창구가 일원화되어 연구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설립 초읽기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한국연구재단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멀리 내다보고 결정해야 할 교육정책을 너무 성급하게 진행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 법안은 6월 18일 입법예고 되어, 7월 30일 ‘기초과학육성을 위한 R&D 지원정책과 한국연구재단법제정’에 대한 공청회, 10월 7일 법안이 확정되기까지 불과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또한 공청회 과정에서 연구자 및 사회 각층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지만 받아들여진 사항은 아무 것도 없다.
한편 지난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한국연구재단 설립에 대한 한 의원의 질문에,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또 다른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라며 설립취지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안병만 장관의 발언은 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이 학문후속세대들을 위한 것인지 정부의 편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만 들린다. 단순히 정부의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기 다른 학문의 지원체계를 통합한다는 논리는 절대자본주의의 폭력성의 다름 아니다.
 
인문과 실용의 균형 필요

 한국연구재단 설립은 어쩌면 인수위 시절부터 실용만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예상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분명히 알아주었으면 하는 점은 인문주의는 실용주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인문주의가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문화적 교양의 발전에 무게를 둔다면, 실용주의는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과 실용성이 있는 이론에 가치를 두고 있다. 인문주의와 실용주의는 한 쌍의 바퀴와도 같아서 어느 한 쪽의 바퀴에 무게가 실리면 결국에는 똑바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정부는 교육정책만큼은 실용의 칼날을 거두었으면 한다.
여담으로 학부 시절 기억에 남는 교수가 있다. 당시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두고 있었는데, 이 교수는 학생들이 강의 때 성의의 뜻으로 가지고 온 음료수를 받지 않았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만약 자신이 음료수를 받는다면 나중에 학생들에게 점수를 부여할 때 공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나는 사실은 학생들이 막상 성적표를 받고나면 성적처리는 매우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평소 과제와 시험답안을 훌륭하게 제출하는 학생보다 시험답안은 조금 부족해도 개근으로 성실성을 보여주는 학생에게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정년을 앞둔 교수는 연구를 통한 논문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그 방식은 분명 절대자본주의 이전의 따스한 교육방식의 한 방법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점점 실용화 되어가는 교육사회에서 인본적인 교육방식을 고수했던 그 교수가 그립다.

 

황복수 편집위원(rainmak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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