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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쌍수대인의 책읽기 4
[150호] 2008년 09월 01일 (월) 복도훈 문학평론가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김상훈 옮김, 오멜라스, 2008)

올라프 스태플든, 『이상한 존』 (김창규 옮김, 오멜라스, 2008)

로버트 A. 하인라인, 『낯선 땅 이방인』 (장호연 옮김, 곤조, 2008)

조하형, 『조립식 보리수나무』 (문학과지성사, 2008)

 

새삼 관습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관습은 중력과도 같다. 새가 나는 것을 보고도 그저 인간은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이 불가항력적인 인간조건이라고 편하게 생각해왔다. 게다가 관습은 세상을 보는 상투적 관습을 낯설게 만들고 급기야 전복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다는 문학에 대한 평소의 생각에도 수십 년 동안 침투해있었다. 나에게 SF(Science Fiction)는 얼마 전까지 그저 과학의 외투를 빌어 비현실적이고 근거 없는 공상의 날개를 단 이른바 ‘공상과학소설’에 불과했다. SF에 대한 이 일본식 번역어가 주는 뉘앙스의 포로였던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언젠가 평소 관심 있는 주제였던 절대적 타자와의 마주침, 타자와의 소통불가능성을 그린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권해주었다. 그러나 그 작품이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개를 저었다. 화성의 우주인(로버트 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이나 초능력을 지닌 사람들(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에 관한 ‘공상과학소설’ 역시 그저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통의 인간 종보다 더 우월한 미국식 백인영웅주의의 산물인 슈퍼맨과 대동소이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옆으로 치워버렸다. 게다가 유전공학의 조작에 의해 태어난 변종생태계의 멸종과 불교적 성찰의 결합이라는 한국의 SF(조하형, 『조립식 보리수나무』)라니! 동양적 세계관과 서양첨단과학의 결합이라니. 조야한 뉴에이지문화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몰랐다. 아니 모른 척 했다. 데카르트가 『성찰』에서 말한 ‘사고하는 사물’(res cogitans)이 컴퓨터와 같은 현대판 인공지능이요, 내 안의 낯선 타자라는 것을 포스트모던 철학을 통해 그럭저럭 잘 배웠으면서도 정작 그런 철학적 사유보다 훨씬 앞섰던 『솔라리스』(1961)에서 남자주인공이 마주친 신비하고도 낯선 행성 ‘솔라리스’가 바로 스스로 사고하는 사물임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오래 전에 자살했지만 느닷없이 부활한 연인이 바로 그녀의 자살로 인한 주인공의 죄책감과 후회, 추억이 물질화된 존재였음을 깨닫고도 그것을 감정조차 물질적이라는 혁명적 유물론의 급진적 테제와 굳이 연결시키려하지 않았다. 관습의 힘이었다. 화성인 스미스가 지구로 귀환하여 지구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키고 또 놀라운 공감의 힘으로 ‘물의 형제’라는 대안가족을 구성하거나 ‘당신은 신입니다’라는 말로 타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낯선 땅 이방인』(1961)을 읽었다. 그러나 그 작품이 물질문명과 돈을 맹목적으로 숭상하는 미국식 종교와 국가, 억압적인 성(性)을 타자=이방인의 시선을 통한 ‘낯설게 하기’와 전복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모른 척 했다. 이 작품이 60년대 미국의 급진적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겨우 안심하고 책을 집어들 수 있었으니. 관습의 힘이었다. 초능력과 텔레파시를 가진 우월한 인간 ‘존’이 등장해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를 폄훼하는 발언들이 당혹스럽고 그들에 대한 살인조차 합리화시키는 대목들이 쉽게 파시즘을 연상시켰던 『이상한 존』(1935). 인간 종을 폄하하면 파시즘이었다. 관습의 힘이었다. 그런 대목이 불편했지만 소설은 오히려 다가올 문명의 파국과 파시즘의 득세에 대한 불안한 경고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자행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종일까. 소설은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돌연변이 존 일당에 대한 호모 사피엔스의 졸렬하고도 악의에 찬 공격과 존 일당의 몰살로 끝을 맺는다. 늘 그런 식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의 ‘소수’를 억압해온 것이 역사가 아니었을까.
SF에 대한 내 관심은 조하형의 『조립식 보리수나무』(2008)에 묘사되듯 한반도를 휩쓰는 불과 토우(土雨)의 재앙이 ‘만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난다면?’이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선진화라는 시장수사학으로 무장한 현 정권의 미래프로젝트가 기관차처럼 ‘이대로 계속 질주한다면?’ 언제부턴가 희미해 보이지만 촛불은 여전히 그 기관차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유일한 희망이다. 집회가 한창이던 유월 어느 날, 집회현장으로 가던 길은 무심한 행인들, 차와 빌딩으로 가득한 여느 일상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불안했다. 나 혼자만 그곳으로 가는 건 아닌가. 이 촛불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렇게 걷던 어느 순간, 앞에 가던 행인들이 갑자기 촛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전과는 다른 세계의 문지방을 밟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술적인 순간이었다. SF도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쌍 수 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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