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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위기, 먹는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다
식량(Food), 연료(Fuel), 금융(Finance)의 복합적 위기, 삶의 방식에 대한 총체적 반성 필요
[150호] 2008년 09월 01일 (월) 노정태 0000@naver.com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간 세계 질서를 지배해온 ‘팍스 아메리카나’의 쇠락과 함께, 인류는 식량(Food), 연료(Fuel), 그리고 금융(Finance)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닥쳐오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 세 가지 단어의 앞 글자를 따, 이것을 “F-words” 문제들이라고 지목했다. 언뜻 보면 전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 모든 문제들은 마치 보르메오의 매듭처럼 서로 서로에게 단단히 얽혀 있다.

아주 간략하게 그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옥수수에서 추출한 고과당시럽을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뚱뚱해진다. 그리고 세계는 바로 그 뚱뚱한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온난화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 각국의 정부는 역시 옥수수에서 바이오디젤을 추출하여 온난화에 맞서고 고유가 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데,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식량의 가격이 폭등한다. 국제 투기 자본은 바로 그 불안정한 식량 가격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고자하고, 결국 최종적인 피해자는 엥겔지수가 높은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착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세포를 기만하는 고과당시럽 HFCS


앞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1970년대 이후 인류는 옥수수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뽑아내고 있다. 특히 그 중 고과당옥수수시럽, 즉 HFCS는 설탕과 함께 코카콜라를 필두로 한 거의 모든 종류의 탄산음료에 첨가된다. 이 고과당시럽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당분이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그것을 섭취하면서도 자신이 ‘당분’을 공급받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신경세포를 기만하는 이 식품첨가물은 현대인들의 고도비만을 낳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옥수수에서 뽑아낸 고과당시럽은, 특히 영양 결핍 상태에서 살아온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초대사량이 낮은 저개발국가 사람들, 태중에 있을 때부터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들은 특히나 이런 칼로리 과잉에 취약하다.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은, 말하자면 체내에 영양 저장을 위한 대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체질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유전적 요인과 태아기 아동 섭취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로 태어난 가난한 어린이들은, 그 체질 위에 HFCS를 들이붓게 된다. 살이 찌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미국 하층민들을 위한 독한 양주인 럼은 옥수수에서 추출되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갓 건너온 흑인들,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무방비 상태로 취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다. 시대가 흘렀지만, 옥수수 추출액이 미국인들과 그 외의 세계인들을 괴롭히는 상황만큼은 여전하다. 옥수수에서 추출된 고과당시럽은, 앞서 말했듯이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설탕물과는 달리 아무리 마셔도 거북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바로 그 HFCS를 한껏섞은 음료가 세계인들의 목을 축이는 것이다.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그로 인한 지구온난화


그래서 살이 찌면, 현대인들은 자동차를 몰고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서 몇 발자국을 뗀 후 다시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온다. 그 헬스클럽에 놓여 있는 러닝머신과 기타 운동기구들은 다양한 운송 수단을 통해 그 지점까지 옮겨졌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트럭에 실려서 그 건물 앞까지 도착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나르고 화물을 나르는데 자동차를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그 목적이 어떻든간에 우리는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2004년 미국에서 사용된 석유 중 3분의 2가 바로 위와 같은 운송 분야에서 소비되었다. 여기 있는 사람을 저곳으로 옮기고, 거기 있는 물건을 여기로 옮기는 일에 공룡의 뼈와 삼엽충의 껍데기가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한국도 만만치 않다.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석유 사용량의 55.6%가 수송 부문에 사용되었다. 고유가시대를 핑계로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그리고 미국의 모델을 따라가는 한국의 경우, 석유는 운송수단이지 발전수단이 아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운송수단이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유는, 지표면 밑에 석유의 형태로 갇혀 있던 탄소를 대기 중에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땅 밑에 있던 탄소가 자동차의 엔진을 거쳐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과 함께, 그 연료를 바이오디젤로 전환하는 것은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석유는 지하에서 캐내지만, 옥수수는 본디 대기 중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이오디젤은 아무리 사용한다 한들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지 않는다.
옥수수, 사탕수수, 유채, 식용유, 콩 등에서 기름을 짜내고 정제하여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충분히 검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은 콩기름으로 작동하였다. 또한, 지금도 유럽 국가 중 상당수는 바이오디젤 산업을 육성하여 활성화한 상태고, 독일 등에서는 100% 바이오디젤만으로 운행되는 차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에 맞서기 위해서만이라면, 모든 바이오디젤은 일반 디젤보다 훌륭한 선택이다.

 

바이오디젤, 과연 식량위기의 해법인가


문제는 바이오디젤을 어디서 추출하느냐이다. 럼주를 만들고 HFCS를 추출하듯, 특히 미국은 옥수수를 압착하여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동시에 멕시코에서는 주식인 옥수수의 가격이 400% 폭등하였는데, 미국과 세계은행은 그럼에도 바이오디젤과 식량위기 사이에 인과관계가 확인된 바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식용 옥수수와 바이오디젤용 옥수수는 품종부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그 논지의 주된 이유다.
하지만, 가디언은 2008년 7월, 세계은행에서 발표하지 않은 미공개 보고서를 폭로한다. 식량 위기의 원인 중 75% 이상이 바로 바이오디젤 때문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식량 위기를 둘러싼 논의의 지평은 한층 복잡한 그 무엇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식량 위기에 대해 고장 난 축음기처럼 ‘자유무역이 해법’임을 강조하던 수많은 논자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대신 일부러 작물을 재배하여 바이오디젤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안 세력들이 힘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식량 위기는 단지 생산과 분배의 조절 차원을 넘어, 석유 문명의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전 인류적 과제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중산층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식량 소비 증가 폭은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문제는 사람이 먹어야 할 곡식, 그 곡식을 재배해야 할 땅이 오직 자동차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대체 에너지의 개발 차원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요구한다.
바이오디젤은 그 자체로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도리어 독일의 도시 윤데처럼, 식당에서 사용하는 폐식용유를 전부 수거하여 바이오디젤을 추출하는 경우, 재활용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도시의 시민들은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며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2,000cc 이하의 승용차를 타면 부끄럽고, 배기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의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도시에는 없다. 식량 위기는 우리가 밥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밥을 먹고 걷지 않으며, 자동차를 타고 서로 그 크기를 견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식량 위기는 먹는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에 더욱 가깝다.

요컨대 우리가 자동차에서 콜라를 마시는 한 식량 위기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우리는 안심하고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 문명을 새로 건설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채식과 웰빙은 문제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자선과 나눔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다. 식량 위기는 인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살아온 방식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어쩌면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위기인 것이다.

노 정 태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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