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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떨어지는 번역 풍토가 가져온 '오역'과 '반역'
현대 프랑스 철학서 번역의 문제들
[149호] 2008년 06월 02일 (월) 오주훈 편집위원 jaime0323@hanmail.net

한국의 현대 프랑스 철학 수용은 학문적 진지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그 이우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한국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 서적의 번역을 제대로 그 분야를 전공한 철학자가 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상당수는 불문학 혹은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단지 불어를 하고, 해당 철학자를 안다는 이유로 번역을 한다. 그리고 그나마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경우에도, 해당 철학자에 대해서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번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오역에 가까운 수준 미달의 번역이 판치는 곳이 현대 프랑스 철학 관련 분야가 된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이런 비판을 편협한 고증주의에 빗대어 비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학문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는 것과 그 학문의 내용이 담보하는 이론적 전문성은 일단 다른 이야기이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유명하고 대중적이라 해서, 아무나 그 내용을 떠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는가.
대중적 인기 이전에 학문적 전문성을 탄탄히 하는 것이야말로 학자들의 임무이고, 바로 그 학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대학원생 아닌가. 그런데 왜 말로를 공부한 불문학자가 말로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데리다의 핵심 저서를 번역하고, 사회학 학위를 가진 자가 고도의 철학적 전문 개념이 등장하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같은 저작을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오역하는 것일까. 물론 역자가 반드시 해당 분야에 학위가 있을 필요도, 그 분야를 전공할 필요도 없다. 단, 그 분야, 해당 철학자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에 준하는 식견을 가진 경우를 예외로 할 때 말이다.

 

데리다와 들뢰즈 번역서 오역의 예


길게 얘기할 필요 없이 어처구니없는 번역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데리다를 번역한 많은 불문학 전공자들은 흔히 ecriture를 문자나 혹은 글쓰기로 번역을 하곤 한다. 이들이 문학을 하는 연유로 문자나 글쓰기에 애착을 갖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ecriture를 저런 식으로 번역하는 것은 철학자로서 데리다를 심각하게 오독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데리다에게 ecriture는 기록으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 기록은 의미의 반복과 자기 동일성의 확립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인해 의미는 반복이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내포한다(관련 논의는 진태원 선생이 번역한 데리다의 법의 힘의 용어 해설에 나와있다). 따라서 데리다의 ecriture은 진리가 자신의 불가능성을 자신의 가능의 조건으로 한다는 일종의 아포리아적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작업이 그 유명한 해체deconstruction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역자는 양태의 외생적 규정에 대한 부분에서 extrinseque를 ‘부대적(비본래적)’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앞서 데리다 번역이 일종의 이해 부족에서 오는 실수 정도로 봐줄 수 있다면, 이 경우는 거의 완벽한 무지에서 오는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양태의 외생적 규정은 양태의 본질을 설명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에티카』 2부 정의에서 본질이 없으면 사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물이 없으면 본질도 없다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전통적인 실체론적 본질주의를 전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물을 규정하는 외생적 인과성이 그 사물의 본질에 기입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extrinseque를 비본래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외생적 인과 규정과 본질 사이의 초월성을 설정하는 오역이다. 

 

전문가에게 조언 구해야


 그밖에 기본적인 관계 대명사 처리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번역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볼 수 있고, 알만한 독자들은 그간 프랑스 철학서적 번역을 둘러싸고 실명과 팩트(fact)까지 오가는 살벌한 논쟁(?)의 실례를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 서적이 그나마 인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래서 책을 빨리 출간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욕심을 상업성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철학서를 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 다만, 번역을 맡기려면 제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역자에 대한 최소한의 조언이라도 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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