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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
[149호] 2008년 06월 02일 (월) 쌍수대인 jaime0323@hanmail.net

슬라보예 지젝, 정영목 역,『지젝이 만난 레닌』 (교양인, 2008)
수잔 벅 모스, 윤일성·김주영 역,『꿈의 세계와 파국』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책읽기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책읽기를 현실적인 분주함으로부터 한발 물러난 고요하고도 정적(靜的)인 활동, 차라리 비(非)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책읽기란 시간이 남아 돌 때, 분주한 상황으로부터 한숨 돌릴 만한 때 하는 활동 아닌 활동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진지한 책읽기조차 실천 없는 이론, 행동 없는 사유로 치부될 때가 많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만일 책읽기가 요즘처럼 현실적, 정치적으로 긴박한 상황이 강요하는 행위라면 어찌할 것인가. 책읽기가 오히려 속절없이 불리해지는 시간이 촉박할 때, 말 그대로 짬이 조금도 나지 않을 때 하는 행위라면 어쩔 것인가.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이라는 주제에 걸 맞는 두 권의 책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던 애초의 계획을 미루고 나는 러시아혁명 이후, 삶의 거의 모든 기획에서 행해졌던 유토피아적 설계와 좌절의 역사를 정치와 예술의 차원에서 고찰하는 수잔 벅-모스의 『꿈의 세계와 파국』, 그리고 러시아혁명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의 사유와 실천을 오늘날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으로 재조명하는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을 읽었다. 지젝의 책에는 러시아혁명 당시의 촉박한 상황에 개입하는 레닌의 글들이 따로 모아져 있다. 지금 읽어도 활력이 대단한 글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벅-모스의 책은 러시아혁명 이후의 정치와 예술 프로젝트가 가진 해방적 열기를 서구미학과 정치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흥미롭게 고찰하고 있다. 그런데 왜 러시아혁명이며, 레닌인가.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지 20년이 넘게 지났다. 오늘날 러시아혁명의 그 지도자 레닌은 자유주의자들과 우파들로부터는 스탈린과 굴락(Gulag)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좌파들로부터는 맑스의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을 단순 왜곡해서 현실에 대한 ‘구성적’ 외과수술을 무모하게 시도한 돌팔이의사 정도로 취급되었다. 한국의 급진적인 학계나 지식인들조차도 레닌이라는 이름, 또는 1917년 이후의 러시아의 혁명적 열기를 향후의 스탈린주의적 테러로 향하는 일직선항로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좌파 지식인들 또한 러시아혁명 당시의 유토피아적 충동을 ‘규제적’ 이념, 즉 만일 그 이념을 직접 실현시키거나 한다면 재앙으로 변할 프로젝트로 합의를 보는데 별 이의가 없다. 그들은 수많은 기계들로 맞물려져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과 같은 연합사회를 꿈꾸었던 볼셰비키의 정치와 아방가르드의 미적 실천을 쉽사리 ‘정치의 예술화’라는 전체주의로 귀결시키며, 혁명적 테러나 폭력 또한 전체주의의 징후로 해독한다. 레닌은 한 세기 전에『무엇을 할 것인가』(1905)라는 팸플릿을 썼다. 그러나 한 세기 후, 좌파들조차 레닌을 가지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우파와 손을 맞잡고 동의하고 있다. 어떤 급진적 이론도 좋지만, 단, 레닌을 가지고 그것을 사유해서는 안 되며, 적극적 실천도 좋지만, 단, 폭력만큼은 안 된다는 거다. 사유금지가 있는가하면 행동금지도 있다. 미국쇠고기수입 반대시위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구호나 폭력적 행동만큼은 안 된다는 거다. 레닌이라면 이러한 부드러운 이중협박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지배이데올로그가 벌이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재앙의 첫 발걸음이라고 했을 것이다. 


학계도 비슷하다. 한반도에서 온갖 혁명적, 반동적 가능성이 모아져 있던 해방공간을 연구하는 최근 젊은 연구자들의 작업을 보다보면 어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축제, 다성성, 언어게임, 공론장 개념과 같은 현란한 이론으로 무장한 채 그들은 실증적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고 연구한다고 하지만, 정작 이론적 결론은 이미 과거에 결판을 낸 상태다. 말인즉슨, 해방공간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러저러하다가 북한의 김일성독재체제로 귀결되고 만다는 내러티브가 그것이다. 이 내러티브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스탈린독재라는 범죄적 기원을 맑스나 레닌에게서 찾는 아주 단순 소박한 내러티브와 꽤 닮았다. 역사의 전개를 결과의 원인으로 소급하는 기계론적 역사관.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가 물려준 재앙적 역사관이 아니었던가. 그와 달리 『꿈의 세계와 파국』, 『지젝이 만난 레닌』은 지금-여기의 레닌주의, 절망적인 상황의 좌표 전체를 바꿀 만한 유토피아, 비어있는(u) 장소(topia)를 발명하기 위한 레닌주의를 읽는다. 그리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에 개입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책읽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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