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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는 최후의 법정이다
존 롤즈 저, 황경식 역, <정의론> (이학사, 2003)
[149호] 2008년 06월 02일 (월) 오현철 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

롤즈는 1971년에 출간된 『정의론』에서 당시까지 사회적 정의로 여겨지던 자본주의 체제와 대의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전면적 반성을 촉구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 불평등이 만연되어 있다. 그 속에서는 빈부, 성, 인종, 계급 등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지만,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그러한 요소들을 수정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조적인 불평등 요인들을 무시한 채, 모순적인 사회적 현상들을 시장과 경쟁의 논리로 치환하였다. 그 결과 출발점이 다른 타고난 불평등은 운수소관으로 치부되고, 불평등이 야기하는 구조적 격차는 개인의 능력 부족에 대한 변명으로 폄하된다. 이러한 생각이 만연된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20/80의 사회로 경직된다.

현대 사회에 롤즈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그 울림은 아직도 커다랗게 남아 있다. 롤즈는 자신의 메시지를 차등의 원칙으로 정식화하였다. 그것은 ‘모든 불평등은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는 불평등은 정의롭다’는 것이다. 차등의 원칙은 개인의 천부적 재능이 만들어낸 결과를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그로부터 발생되는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질 것을 촉구한다.

차등의 원칙은 또 호혜성의 입장을 지지하여 보다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 타인의 복지에 기여하여야 함을 천명한다. 그리고 박애의 원칙을 반영하여, 열악한 처지에 있는 타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보다 큰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로써 롤즈는 생산된 재화의 재분배만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넘어,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적 기본구조를 수정할 수 있는 이론적 준거를 마련하였다.


롤즈는 이 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인 시민불복종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시민불복종을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 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정의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처지에서 말하자면 미국 소고기 수입 정책에 반대하기 위하여 집회와 시위를 전개하고 그 과정에서 집시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바로 시민불복종이다.

롤즈는 불법행위를 모두 같은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시민불복종이 비록 불법행위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입헌체제를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간주한다. 그는 시민불복종이 정의로운 제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최후의 법정은 정부도 법원도 아닌 전체로서의 유권자이며, 국민들은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궁극적인 주인이다. 시민불복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직접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론』이 출간된 이후, 롤즈의 사상은 자유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을 형성하였다. 롤즈 이후로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할 때, 롤즈와 자신의 관점 차이를 서술해야만 했다. 롤즈가 차등의 원칙을 통해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칙 즉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시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론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롤즈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체제를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원칙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이 점은 ‘20대 80의 사회’로 고착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할 중요한 원칙이다. 그리고 오랜 동안의 권위주의 통치를 벗어나 이제 막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롤즈의 시민불복종 이론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는 신권위주의 국가를 낳을 수 있고, 그럴 경우에 그의 시민불복종 이론은 우리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갈 때 우리를 옹호해줄 철학적 기초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민의 생명보다 타국과의 약속을 더 무겁게 여기는 정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할 때, 그리고 앞으로 이와 비슷한 부정의한 일이 반복될 때 우리는 롤즈의 시민불복종 이념에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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