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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은 연극배우가 아니다
[148호] 2008년 04월 14일 (월) 권경우 문화평론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임명되자마자, 노무현 정권 당시 임명된 산하 단체장들의 퇴진을 종용하는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다. 이는 ‘완장을 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각한 반응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문화예술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후 몇 사람은 사의를 표명했고 일부는 퇴진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유 장관은 여론의 악화를 의식했는지 ‘대상이 되었던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연극 무대와 TV 드라마에서 쌓아온 친근하고 깔끔한 이미지와 ‘역사스페셜’ 진행에서 보여주었던 합리적인 이미지의 소유자 ‘유인촌’은 사라져버리고, 왜 갑자기 문화계 편가르기에 앞장서는 ‘편협한 정치인 유인촌’이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합리적인 공모 과정을 무시한 채 서울시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 시달렸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비록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정체불명의 아주 복잡한 이름을 걸고 있지만 그 근본은 ‘문화’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아닌 문화예술인 출신의 장관이 임명된 것 자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더욱 증진시키고, 한국사회를 문화의 얼굴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시민들은 자본과 경제 중심의 사회에서 숨이 막혀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공기와 같은 ‘문화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화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율성이다.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문화’를 동시에 포함하는 표현이다. 전자는 빈부격차, 강남/강북, 서울/지방, 세대 등 다양한 차이에 따라 문화적으로 차별받지 않으면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기초예술인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후자는 시민의 일상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뛰어넘어 성, 계층, 세대, 인종 등 다양한 차이에 따른 비민주주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 우리의 일상에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러한 모습을 문화적으로 바꿔냄으로써 더 아름다운 사회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유인촌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극 대사’를 묻는 질문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인용했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장관 유인촌’은 이 말을 마음속에 품고 문화정책을 구상하길 바란다. 다만 ‘연극배우 유인촌’은 자신의 바람대로 장관을 그만 둔 후에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더 이상 청와대 혹은 누군가 작성한 ‘대본’을 읽는 연기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인’의 마음을 품고, ‘행정가’의 실천을 보여주는 장관으로 기억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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