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17 월 16:06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문화 > 영화 및 관극평
     
노동자대투쟁의 열기를 뒤로하고 본 <길소뜸>
영화로의 발걸음 이끌어준 계기돼
[147호] 2008년 03월 03일 (월) 김혜원 영화이론 박사수료
   

김혜원, 영화이론 박사수료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영화에 대한 완강한 편견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영화가 문학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었다. 소설읽기를 광적으로 즐겼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와 사건 중심의 영국이나 미국 소설 보다는 사색적이고 스케일이 큰 독일과 러시아소설을 더 좋아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머리 속에서 소설이 펼치는 세계가 공간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아마도 내 인생의 소설을 고르라면 기나긴 목록에 치여 단 한 줄도 못썼을 것이다. 아무튼 영화는 소설만큼 다채롭거나 복잡하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의 생각의 결을 훨씬 더섬세하게 펼쳐 놓을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는 세계관이 아니라 볼거리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건 중심의 영화일수록 영화로서는 성공한 것이라 보았다. 여기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대개 스릴러 장르나 호러 장르의 영화들이었다.(나중에 영화를 공부하면서 공포와 스릴러영화들이 오랫동안, 70년대가 될 때까지 영화계의 변방에서 싸구려 장르로 취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기도 했다) 이 장르의 영화들이 주는 공포나 서스펜스는 영화표의 가격을 생각나게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편견은 한국영화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무시’내지 ‘멸시’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당시 국산영화(당시엔 국산영화라 불렀다)를 선택하는 것은 지적이지 않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국산 영화는 필연코 재미없거나 수준이 낮은 것이라 여겨졌다. 브라운관의 스타가 영화에 나오면 ‘이미지를 버리는 것’으로 보여졌고 실제로 유명 탤런트가 충무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이미지관리를 하곤 했다.
영화 <길소뜸>을 보기 전까지 영화는 나에게 시간 때우기 좋은 값싼 장르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길소뜸>을 보게 된 계기는 우연일 수 밖에 없었다. 우연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숙명적이다.
86년 여름,운동도 연애도 안풀리는 친구와 뾰족한 해답이 없는 나는 답답한 마음을 풀 길없어 대낮부터 술을 마시다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 당시에 영화를 즐기지 않던 나는 훤한 낮에 술을 마실 수는 있어도 영화를 보러가는 일은 없었다. 표를 사고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그것이 <길소뜸>인지 몰랐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기분이었다.

아마도 여름과 술기운과 노동자대투쟁이 뿜어내는 열기로부터의 도피처로 에어컨이 시원한 극장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몽타쥬 위로 ‘누가 이사람을 아시나요’ 노래가 흐르고 김지미와 신성일이 등장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영화관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전두환정권이 무마용으로 내세웠던 이산가족찾기의신파라니! 그러나 곧 마음 속의 비아냥으로 삐딱했던 태도가 화영(김지미)과 동직(신성일)이 만나는 장면에서 놀라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길소뜸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들이 보던 보름달이 화영의 내레이션이 입혀진 가운데 굵은 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그 달을 쳐다보는 현재의 장면으로 전환되는 장면에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면서 서먹하던 만남이 잠시 따뜻해지는가 싶다가도 가까이하기 힘든 현재의 처지를 환기시키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버무리는 짧은 순간이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과거에도 신분의 차이로 결혼하기 힘들어서 이산가족이 되었고, 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핏줄을 인정하기 어렵고 상대의 진심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근원으로 계급의 차를 제시하는 냉정한 시선이 아프고 따갑게 머리를 눌렀다.그로부터 긴세월이 흘렀지만 민족과 계급에 대해 이렇게 사유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이기 전에 이미 다른 것이었다. 영화를 본 뒤 그것을 복기하는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같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로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길소뜸>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인데 볼 때마다 생각할 거리나 연구주제 따위를 자극받곤 한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조성환 | 편집장 : 서신화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원준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gs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