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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
[147호] 2008년 03월 03일 (월)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보수의 시대라기보다 자아상실의 시대다. 생각하는 동물이며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나 인간과 사회에 관한 질문을 불편하다는 생각조차 없이 불편하기 때문에 던지지 않는다. 경제가 인간과 사회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오로지 경제동물의 조건반사적 행위로서 다이내믹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비판적 안목을 갖춘 진보의식은 희귀하다. 그러나 이 희귀한 진보의식조차 분단 상황이 빚은 특성만큼 한계를 갖는다.

지배세력은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는 장치인 제도교육과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있다.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제도교육과 대중매체에 아직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80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분명 민주주의와 충돌하지만 오히려 강력하게 관철되는 첫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운동권에서 ‘의식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중이 의식을 형성하지 않았거나 중립적이어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지배세력은 의식화의 주체이며 대중은 그 객체다. 일제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분단 상황은 지배세력에게 대중에 대한 의식화를 더욱 강력하게 펼치게 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의식은 거의 ‘의식의 반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로 대학시절에, 그리고 드물게 일터에서, 선배나 책을 ‘잘못’ 만남으로써 그 때까지 제도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의식세계에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의식을 벗음으로써 갖는 의식이다.
문제는 의식의 ‘성숙’이 아니라 의식의 ‘반전’을 통해 갖는 진보의식이라는 점이다. 지배세력이 주입시킨 의식을 벗어냈을 뿐, 새로운 진보 의식을 실현 적합성과 씨름하면서 형성한 게 아닌데도 이미 ‘태양의 진리’를 획득한 양 자만에 빠지기 쉽다. 의식의 성숙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인데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친 게 아니므로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대부분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식’에 머물고 만다.

가령 북한에 대한 시각은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와 그 ‘반전’이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지 알게 해주는 비근한 예다. 모든 대중은 지배세력에 의해 반북의식을 형성한다. 일부 사람들만이 나중에 현대사를 통해 일제부역세력 청산과 대미관계 등에서 남한의 역대 정권과 다른 점을 알게 되면서 급반전하여, 친북으로, 심지어는 종북으로 나아간다. “‘도’ 아니면 ‘모’”식이다. 다시 말해,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와 그 반전은 북한체제를 대화와 협상 대상의 실체로 인정하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갖는 바람직한 자세를 양쪽에서 협공하여 좁히는 결과를 빚는 것이다.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반전’의 관계는 대중과 진보의식 사이의 소통을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어려운 진보의식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지기 쉽다. 자칫 ‘자기팽창증’에 걸려 사회주의혁명과 노동자계급해방을 쉽게 꺼내기도 한다.
세상은 모순 덩어리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태양의 진리’가 없듯이 모든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권력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가능하다고 해도 무척 위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과 유리된 진보의식은 사회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으로 권력집착증을 낳기도 한다. 자아상실의 시대, 더욱 대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실천하면서 대중과 함께 스스로 진보하는 진보의식이 요구되는 때다. 새롭게 태동하는 진보신당의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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