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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번역비평의 장을 위하여
《번역비평》 (한국번역비평학회 편, 창간호 2007 가을)
[147호] 2008년 03월 03일 (월) 조재룡 고려대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 문학평론가

“번역은 현실 속에 실재하는 지역적ㆍ부분적 문화에 총체적 보편 문화의 가치와 전망을 열어줄 통로로 구실을 한다.”한국번역비평학회 초대회장 황현산(고려대 불문과 교수)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번역은 비단 언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소통의 근본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본지는 이러한 번역의 방법론을 다양화하고 체계화할 수 있게 하는 번역비평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로 한다. 먼저 이번 호에서는 번역비평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한국번역비평학회의 잡지 《번역비평》을 소개하도록 한다. 다음 호부터는 번역서를 대상으로 삼은 구체적인 번역비평을 다루도록 할 것이다. <편집자>

 


 

 우리는 매일같이 번역서를 접하고, 번역서를 통해서 수많은 정보뿐 아니라 문화와 문학, 역사와 사회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얻고 있으면서도, 정작 번역이 인문학 전반에 관한 성찰을 도모할 중요한 장소라거나, 번역에 대한 연구 및 비평이 인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나아가 인식의 물꼬를 터줄 것이라는 사실에는 언뜻 동의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의 빈곤에서 벗어나고 타자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수용할 공간이 바로 번역임에도, 번역에 대한 사회적ㆍ학문적 평가와 인식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현실인 것이다. 번역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 작품을 마주하여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난해한 문체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번역서와 마주하게 될 때 자명한 시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나, 몇 년이고 공들여 번역ㆍ출간한 인문학 서적이 학술적으로 저평가 되거나 심지어 인정받지 못해온 대다수의 사례들만을 보아도 우리의 번역에 대한 사유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단박에 알게 된다.

번역이 외국문화의 낯선 것을 수용하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우리의 것을 다시 성찰해볼 유일한 통로임에도, 현실적으로 번역이 처한 상황은 이론적ㆍ사회적ㆍ문화적ㆍ정치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태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크지 《번역비평》의 창간

2006년 가을 창립된 한국번역비평학회가 번역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인문학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과감히 표방한 것은 한마디로 번역이 처한 이 같은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지니는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학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론 생산적인 번역비평과 번역가를 위한 번역 환경 조성 및 대학에서의 체계적인 번역교육이 시급한 일이다.

무크지 《번역비평》은 바로 이러한 취지와 의지를 실현할 한 방편으로 탄생한 조그마한 산물이다. 황현산 회장의 말에 따르자면, 《번역비평》은 “번역을 이론화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창간되었으며, 국내외 번역의 현장을 분석하고, 번역가의 소중한 작업들과 번역이론의 가치를 한데 아우르는 장을 열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번역에 관한 다양한 담론 소개

‘번역비평’이라는 모토를 달고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무크지 《번역비평》 창간호의 구성을 잠시 소개하자. 번역비평의 맥락과 가치를 동서양을 넘나들며 일갈한 원로 학자 정명환의 <들머리에>와 번역비평의 필요성과 전망을 제시한 황현산 학회 회장의 <창간사>가 소개된 이후, 번역비평의 정치적ㆍ사회 문화적 가치를 가늠해보고자 ‘인문학 번역과 번역문법’(전성기, 고려대), ‘번역의 정치성과 사회적 기능’(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번역비평의 가치’(정혜용, 서울대)를 다룬 글들이 <기획논단> 코너에 마련되어 있다.

<번역비평> 코너에는 재망매가의 번역을 통해 살펴본 문화적 주체의 문제(김정란, 상지대)와 서양 고전번역의 해석과 방향성에 대한 체계적인 제시(김재홍, 숭실대)를 다룬 글, 한국시의 러시아어 번역의 문제(피사레바, 고려대)와 도스토예프스키의 한국어 번역의 실례에 대한 정치한 분석(조준래, 한국외대), 페르난도 산체 드라고의 한국어 번역에 대한 비평(권미선, 경희대)이 실려 있으며, 이 외에도 ‘번역가’와 ‘저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비판하고 그 관계를 새롭게 조망한 평론(김희진, 성균관대)과 ‘낯섦의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번역소설을 분석ㆍ비평(윤수진, 서울대)한, 번역학을 현재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 코너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한국번역비평의 발자취> 코너에는 황호덕(성균관대), 정선태(국민대) 두 소장학자가 우리말과 우리의 근대성 형성과정 전반에 번역이 맺고 있는 불가분한 관계를 정리한 <번역 또는 식민주의를 애도하는 방법>과 <번역의 근대, 漢文脈의 근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발터 벤야민, 앙리 메쇼닉, 발레리 라르보를 중심으로 구성된 외국의 번역론은 <번역이론 연구와 소개>에 번역ㆍ소개되어 있다.

이 외에 표정훈 출판평론가, 박상익 교수, 윤영찬 기자가 함께 참여한 <신간번역서평>과 <번역 출판과 현장> 코너에서는 현재 번역가와 국내 번역 자체가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되짚어보고, 반성할 계기가 마련하고자 하는, 번역계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 제시되어 있으며, 2007년 3월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바 있는 ‘한국번역비평학회 창립학술대회’ 보고서가 번역가들의 발표 원고를 정리한 글과 함께 실려 있다. 《번역비평》은 지금 새로운 기획 단계에 와 있다. 창간호에서 보여준 역량을 이어가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번역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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