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17 월 16:06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이 시적(詩的)인 시대에 무엇을 위한 궁핍한 자들인가
[147호] 2008년 03월 03일 (월) 복도훈 국어국문과 강사, 문학평론가

슬라보예 지젝,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한보희 옮김, 새물결, 2008)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97년 IMF체제 이후 십년이 흘렀다. 그 어느 때보다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주의와 이익의 득실에 따라 정치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실용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둘러싼 모든 기획에 용이하게 정착할 것처럼 보인다. 정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목표를 위한 행정으로 압축되고 자유,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정치이념은 탈이념의 구호 아래 ‘자유로운’ 경쟁과 ‘공평한’ 투자를 약속하는 경제논리로 환원되며, 문화는 ‘문화콘텐츠’라는 신기술공학과 결합하여 세계시장에 내놓을 첨단상품으로 전치중이다. 압축, 환원, 전치라……. 참으로 시적(詩的) 현실이 아닌가!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의 지표가 언어를 통해 그렇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시가 언어의 종(種)이면서 언어의 주권을 점하려는 유(類)인 것처럼, 경제가 정치, 문화와 같은 계열의 ‘종’이면서 그것들 위에 군림하는 ‘유’라는 맑스의 통찰력이 불길한 조음을 낸 적도 없다. 시적인 저 십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삶을 가치 짓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제 삶은 언제 ‘퇴출’될지 알 수 없게 되면서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동물적 생존이 되었으며, 이 생존지상주의는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다’라는 ‘웰빙’과 손잡는다. 살벌한가하면 냉소적이기도 한 이 혼종적인(?) 시기에 누군가와 주고받을 수 있는 인사가 있다면, 그것은 흑인들이 노예제도와 생사투쟁을 벌이던 때의 ‘별 일 없었지?’(What's up?)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바야흐로 87년 민주화 이후, ‘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삶을 위한 기획과 실천은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는가. 미완의 민주주의기획은 남았는가. 그보다 이렇게 물어야 마땅하다. 그동안 민주주의(국가)는, 정치경제와 문화, 그리고 삶은 무엇이었는가.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이런 물음, 곤경과 정면 승부하는 가장 급진적 사유다. 『사도 바울』은 정치, 과학, 예술, 사랑과 같은 ‘사건’(event)의 충실성이 사라진 배반의 시대에 ‘누가 진정으로 살아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보편주의적 공동체의 정초자인 사도 바울의 삶과 투쟁을 호출한다.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는 좌파로부터 우파에 이르는 전체주의에 대한 사유금지조치(denkverbot)와 대결하는 한편, 전체주의라고 불렸던 스탈린주의에서조차 격렬한 유토피아의 흔적을 알아보고 그것을 추출하는 모험을 벌인다.

시장경제와 결합해 기생하는 정치체인 민주주의에 대해, 그것을 다르게 사유하는 일을 전체주의로 몰아붙이는 국민국가비판론, 제국과 식민지의 혼종성 연구, 우리 안의 파시즘과 대중독재론의 지지자들은 이 책을 읽고 불쾌해야 마땅하다. 아마 세 권의 책 중 가장 어두울 『호모 사케르』는 폴리스에서 집단수용소에 이르는 서구 정치체의 결실을 검토하면서 누구나 죽일 수 있으되 죽인 자가 처벌받지 않고, 죽음의 제단에 바치되 희생물도 아닌 ‘호모 사케르’(homo sacer, 성스러운 인간)의 출현이 민주주의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라 상시적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들은 쓰레기가 되는 삶, 궁핍한 자의 헐벗은 삶으로부터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연대하는 일이 오늘날 가장 긴급한 정치적 임무라고 암시한다.

이 책들과 저자들은 그런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세 권의 책을 감싸는 배경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관타나모수용소를 만들면서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미적 삶의 기획에만 열심인 사람들의 ‘민주주의국가’인 미국(로마제국)과 그 연장인 전지구적 현실로 보인다. 바디우의 바울, 지젝의 레닌은 앞서 말한 시적 몽매주의를 쪼개고 들어갈 정치적 개입의 화신들이며, 아감벤에게 바울도 그런 인물이다(아감벤은 파솔리니의 영화에 사도 빌립보로 출현했으며,「로마서」에 관한 책을 썼다). 언젠가 횔덜린은 ‘이 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라고 물었다. 오늘날 이 물음은 이렇게 뒤집어져야 마땅하다. ‘이 시적인 시대에 무엇을 위한 궁핍한 자들인가’라고.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조성환 | 편집장 : 서신화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원준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gs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