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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리뷰-환생하는 유령들
[146호] 2007년 12월 03일 (월) 박수령 편집위원 sealover_80@daum.net

파브리스 비르질리(Fabrice Virgili),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적을 사랑하기-관계, 아이, 그리고 처벌」,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점령의 집단기억과 섹슈얼리티-한국과 프랑스의 젠더사 비교연구』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여기 그 유명한 로버트 카퍼(Robert Capa)의 사진 한 장이 있다. 사진 속 군중들의 시선은 중앙에 아기를 안고 있는 삭발‘된’ 여인에게로 몰려 있다. 언뜻 보기에도 그녀는 무언가에 쫒기는 듯 급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녀 바로 옆에 제복을 입은 한 사내는 추궁하는 것 같기도,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 그녀와 함께 ‘행진’하는 ‘남’, ‘녀’, ‘노’, ‘소’는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퍼포먼스가 아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퍼포먼스라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제2차대전 시기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던 프랑스에서 1943년부터 1946년 겨울까지 광범위하게 치러지던 처벌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명령에 의한 것도, 강제적인 법 집행에 의한 것도, 보상이나 대가가 따르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녀들이 점령군(독일군)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아이를 낳아 ‘조국의 몸’(프랑스)을 더럽혔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쟁 중 여성의 성적 문란과 다른 인종과의 피의 결합은 남성-여성의 지극히 사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는 ‘점령군’ ‘남성’과 ‘피점령지’의 ‘여성’ 간에 결합이며, 그것은 조국을 배신한 이단자이자 프랑스 남성에 대한 모독과도 같았다. 프랑스의 국가 <라마르세예즈 (La Maseillaise)>가 공표하고 있듯이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자르러 다가”오는 적을 막아내지 못한 프랑스 남자들의 무능력은 이들 적을 사랑한 여성들에 의해 온전히 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여성들을 벌하는 행위가 민족적 단죄, 혹은 전쟁이라는 인류 최악의 실태를 폭로하고 반성하는 심급에서가 아니라 손상된 남성들의 자긍심을 재부여하는 행위로 독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들의 육체에 가해지는 상징적인 폭력에 의해 남성들의 오욕과 수치심은 어떻게 해서든지 정화되어야 했다. 그 내밀한 욕망이 ‘조국’이라는 이름을 빌어 발화되고 있는 순간을 위의 사진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손상된 자존심과 소유권에 대한 회복은 삭발이라는 처벌의식이 공공연하게 거행됐다는 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그녀들이 삭발은 지역 사회의 중심부인 시청, 교회 앞 광장, 시장, 그리고 경찰서 앞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것은 나치 문양을 삼색기로 교체하거나 독일어로 씌어진 표지판을 뽑아버리기는 행위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낙인찍기를 자행한 인물들은 그녀들과 가장 가까웠던 이웃과 남편들,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똑같은 처지에 처했을지도 몰랐을 여성들이었다.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그들은 이 낙인찍기의 과정에 합의했던 것이다.
성스러운 조국을 여성의 몸으로 환기시키는 은유를 통해 그 몸을 처벌하고 대리보상 받는 행위는 비단 프랑스에서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2차세계대전의 종식 후 식민지배를 경험한 대다수의 민족들은 그들의 국가, 혹은 민족을 훼손된 신체로 그려냈으며 그것을 담아낸 기표는 단연 여성의 몸, 그것도 성적으로 유린당하거나 유린하는(독일군 남성과 관계한 여성을 강력하게 통제한 반면, 독일 여성들과 관계한 프랑스군 남성에 대해서는 관대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섹슈얼리티에 의해서였다. 문제는 육체적 가해의 흔적이나 전쟁․점령의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희미해지지만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전쟁의 사생아’들은 바로 훼손된 조국=훼손된 남성성의 증표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훼손된 신체=조국을 상기시키는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 여하와는 상관없이 방치되거나 방기되었으며 심지어는 낙태와 같이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됐다.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성년이 되기까지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숨겨왔으며, 성장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경험해야만 했다. 독일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은 ‘fritzouille’나 ‘la boche’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가 됐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그리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조선인 전재민들의 귀환과정을 그리고 있는 엄흥섭의 소설 「歸還日記」(『우리文學』, 1946. 2.)에서는 ‘정신대’에 끌려갔다가 술집 작부가 된 ‘순이’와 대구여인의 해산과정을 통해 동시기 전혀 다른 공간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혼혈’의 운명이 암암리에 제시되고 있다. 비록 술집 작부로 지내왔지만 일본인의 씨는 허락하지 않은 채, 조선인의 씨를 가진 것에 대해서만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순이와 더러운 ‘원수의 씨’를 잉태한 대구여인의 죄의식, 그로 인한 아이의 방기는 향후 이 두 아이가 살아갈 삶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선상(船上)에서 이 고고성(呱呱聲)을 둘러싼 일대 사건은 일본이나 조선이라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했다. 재일조선인 작가 이회성의 장편 『백년동안의 나그네』(프레스빌, 1995)에서는 멀리 가라후토(현 사할린)에서부터 시모노세키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군의 가족공동체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이곳 멀리까지 이끌었다고 하는 소위 해방의 기쁨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들의 행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 아내와 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프랑스에서 독일군이 점령한 기간은 4년 남짓에 불과했다. 그 9배에 달하는 기간을 ‘동고동락’했던 조선-일본 사이에는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혹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과 과거의 한 시점에 유폐된 수많은 ‘관계-처벌’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라는 삭발된 머리처럼 잊혀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소 본질주의적인 그들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이 역사의 기억들은 피의 대물림을 통해 죽지 않고 환생하는 유령들처럼 끊임없이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은애 (국문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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