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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60년대 두 지식인이 전하는 지식의 '실천'
[146호] 2007년 12월 03일 (월) 박수령 편집위원 sealover_80@daum.net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옮김,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학사, 2007.
레이몬드 윌리암스, 성은애 옮김, 『기나긴 혁명』, 문학동네, 2007.

 
‘인문학의 위기’는 굳이 모 사립대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 선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미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지식인의) 죽음이 언급되는 시기이니 말이다. “현대 사회의 지식인은 ‘지식in’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나, <디워> 논쟁으로 야기된 대중과 한 지식인의 논쟁을 바라보며 “지식인에게 있어 진보는 이제 대중과 싸우는 일”이라던 또 다른 지식인의 주장에서도 그러한 지식인의 ‘위기감’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지성 혹은 집단지성을 이야기하는 현재, 어쩌면 지식인은 한 일간지에 연재된 기획기사의 제목처럼 이미 ‘죽음’을 선고받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식인은 곧 사라질 ‘종’이 될 것인가? 얼마 전 같은 날(10월 31일) 발행된 두 권의 책은 우리 사회 지식인의 위치를 다시 고민해 볼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눈 여겨 볼만 하다. 우선, 첫 번째 책은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1965년 일본 강연을 엮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박정태 옮김, 이학사)이다. 156페이지의 이 짧은 강연집은 지식인이 처한 상황과 지식인의 정의, 역할 등을 주제로 삼아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강연으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이에 비해 가격도 두께(525p.)도 만만치 않은 『기나긴 혁명』(성은애 옮김, 문학동네)은 영국 출신으로 테리 이글턴, 스튜어트 홀 등 걸출한 문화연구가를 키운 것으로도 유명한 레이몬드 윌리암스(1921~1988)가 1965년 출간한 책을 뒤늦게 번역한 것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과 『기나긴 혁명』은 1960년대 프랑스와 영국 출신의 두 지식인이 당시 지식인과 대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사실 외에도, 각각 우리 사회 지식인과 인문학 담론에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텍스트로 평가할 만하다. 사르트르가 첫째 날 지식인의 상황을 강연한 내용 중 “프랑스에서는 이제 지식인의 몰락을 거론합니다. 즉 미국식 사유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지식인의 소멸을 예언하는 것입니다”라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는 이미 60년대부터 지식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또한 『기나긴 혁명』 역시 출간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문화 연구’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써 문화 연구의 작업들을 활발하게 수행해왔다는 역사적인 맥락을 떠올려볼 때,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고 하겠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이미 해적판으로 몇 차례 출간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2007년판은 원저작권자인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 정식 계약 후 사르트르 전공자에 의해 처음 번역․출간된 것으로, 기존에 오역된 부분을 상당 부분 바로 잡았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20세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졌던 사르트르에 의하면, 진정한 지식인은 사이비 지식인과 구분되어야 한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의 중간 계급이 어쩌다 실수로 만들어낸 여분의 인간인 지식인은 태생적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지배 계급의 의도대로 복종하고 상응하는 사이비 지식인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보편성과 특수성의 불일치를 깨달으면서 모순을 내면화하는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식인의 모순은 추구해야할 보편적 진리와 지배 계급의 특수한 이해 사이에서 발생하며 이러한 모순에는 자기 내면에서 발생하는 모순이 포함된다. 따라서 지식인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식인 자신의 모순 속에서 사는 일이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급진주의를 통해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인 것이다.
맑스주의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한 사르트르는 이러한 지식인이 ‘자신과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는 ‘무능하며 불안정한 자’라면서도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피지배 계급의 이익에 복무해야한다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을 ‘변명’한다. 특히 현실을 드러내고, 극복하며, 보존하는 실천적 지식의 계기를 포함하는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현대 한국 사회 지식인들이 거듭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공산권 국가들의 독재를 옹호하고 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 사실은 그가 맹목적으로 맑스주의에 집착했으며 순진한 낭만주의자였다는 평가를 낳았다. 그만큼 그의 급진적 면모에 대해서는 엇갈린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레이몬드 윌리암스의 『기나긴 혁명』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일어나는 ‘문화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론에서 “우리는 기나긴 혁명의 과정 속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최고 수준으로 묘사함으로써 일부분이나마 해석할 수 있다”고 밝히며, ‘기나긴 문화 혁명’을 재차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가 제안하는 문화연구는 특별한 소수의 고급문화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문화와 창조성의 개념, 개인과 사회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그는 실제로 예술이 결코 특수한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는 가장 일상적인 활동에 폭넓게 걸쳐있다는 주장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엘리트주의적 대중문화비판에서 대중문화를 구출해낸다. 2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러한 ‘패턴’의 분석을 동원해 영국의 교육 제도와 출판, 대중언론 등의 자료를 꼼꼼히 제시하면서, 3부에 이르러 좌파인 그답게 1960년대 영국 사회를 분석하고 문화에 대한 어떤 시각이 참여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 지 모색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문화연구는 ‘실천’을 담보로 한 ‘기나긴 혁명’인 것이다.
이제 1960년대 유럽의 두 지식인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인문학과 지식인이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을 단순히 대중의 탓만으로 돌릴지 고민해 볼 일이다.

손상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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