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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로 살아간다는 것
자이니치 1세대 "그의 삶, 그의 문학"
[145호] 2007년 11월 05일 (월) 임세화 편집위원 farewell_i@daum.net

코리언-재패니즈 작가의 발생

일본 소설이 세간의 각광을 받게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들의 소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이후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마니아 층을 형성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최근 들어서도 오쿠다 히데오나 온다 리쿠와 같은 여러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계속해서 수십 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출판계에서 소위 ‘일류(日流)’는 더 이상 낯선 말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소설들 중에는 가네시로 가즈키나 사기사와 메구무와 같은 소위 코리안-재패니즈 작가가 쓴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흔히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교포 출신의 작가가 일본어로 쓴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런 소설들이 한국어로 다시금 번역되어 읽힌다고 하는 현상이 자아내는 기묘한 느낌은 분명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재일조선/한국인 작가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일은, 식민지 시대의 장혁주와 김사량으로부터 따진다면 의외로 그 역사가 유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일교포 작가가 쓴 일본어 작품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다고 하는 지금과 같은 조건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엄밀히 말해 1945년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의 발발이라는 20세기 중반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격동으로 인해 대량의 조선인이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잔류하게 된 사태와 맞물린다. 코리언-재패니즈의 발생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러한 사건은 간단히 말해 한반도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디아스포라가 대량으로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일본에서는 그러한 디아스포라들의 위치와 입장을 대변하는 소위 코리언-재패니즈 1세대 작가가 출현하게 되는데 김달수, 김석범, 이회성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자이니치를 포함한 일본 내 사회적 소수자 간 연대라는 문제를 경쾌한 필치로 돌파해 내고 있는 가네시로 가즈키와 같은 현재의 코리언-재패니즈 작가들의 직접적인 선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혈연적 동질성, 그리고 그들이 조국에 보내는 끊임없는 향수와 구애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의 조국은 그들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망각하거나 혹은 구축(驅逐)해 왔다. 우리는 에쿠니 가오리나 오쿠다 히데오에 열광하지만 김석범이나 이양지 등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 중에서 재일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 이회성이 이번에 다시 방한했다. 이번 방한은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재단이 세계 한인의 날을 맞아 재외동포 한인 작가 대표격으로 초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한 때 남한의 군부 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던 작가가 이제 정부 산하의 재단법인에 의해 공식적으로 초청받고 있는 데에서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본 행사에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본교 문화학술원의 주관으로 10월 5일 오후 4시 본교 예술극장에서 이회성 초청 특별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강연회를 위해 새로 작성한 원고를 정성들여 읽어나가고 또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에 성의 있게 답하는 노작가의 모습은 동아시아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온 그의 생애 못지않게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다.

삶, 문학,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는 황해도 재령 출신의 아버지와 경상북도 포항 출신의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남사할린에서 출생했으며 현재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자이니치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사실 일본 뿐 아니라 남과 북, 그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는 중간자로서 살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실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또 불편한 제약들이 가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회성 자신은 그러한 조건이 “사람을 죽이는 국적”을 초연할 수 있었던 계기로 작용했다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북 모두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분단 현실에 초연한 채,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 속, 통일된 조국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 북한의 상황을 잔뜩 웅크린 채 외부를 향한 가시를 한껏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로 비유하면서 통렬하게 풍자해 보였다. 이 비유는 흥미로웠지만 다소 소박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는데, 이회성은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하는 데 있어서도 단호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는데 요컨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떤 공공의 정의에 부합하는 작가적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철저하게 사실에 기초하여 창작하고 자본주의의 확산을 포함한 세계의 다양한 부조리와 대결한다는 것이 된다. 이를 부정하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 말미에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를 친절하게 권해 주고 있는 데서 러시아문학과 출신인 그의 문학관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가 엿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이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태도라고 할까.
그에 비해 재일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전까지 전개해 왔던 여러 이야기들을 다소 두서없이 정리해버리고 있어서 다소 산만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재일한국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오로지 귀화를 종용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동조하고 있는 듯한 태도에 대해 귀화하지 않은 ‘사이’의 동포들을 확보해 두는 편이 양국의 공존공생을 위해 도움이 되며 재일한국인들의 유랑의 운명을 종식시키는 데도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왜요? 재일동포에게는 ‘병역의무’가 없기 때문에 본국의 선거에 참가하는 것은 무리라고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병역’인가 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늙은 몸을 이끌고 지원병으로서 병영에 입영하겠습니다. 젊은 병사에게 훈련을 받아도 좋습니다. 군사훈련 때 총 한 자루를 받는다면 그 총구에는 아름다운 꽃을 하나 꽂겠습니다. 북한에는 총은 절대 겨누지 않고 총구를 허공으로 돌리겠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재일 2세의 본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젊습니다. 그 정도의 기개는 가지고 있습니다.”

자이니치 1세대 작가 이회성

재일한국인 작가 이회성(72)은 1935년 당시 일본 영토였던 남사할린에서 태어났다. 1945년 갑작스러운 패전을 맞이한 그의 가족은 일본 본토로 탈출하여 조선으로 귀환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에 정주하게 되었다. 이 때 가족과 함께 일본 열도를 횡단했던 유년 시절의 체험이 󰡔백 년 동안의 나그네󰡕에 잘 그려져 있다. 와세다대학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정치경제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1969년 제12회 󰡔군조(群像)󰡕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1972년, 󰡔다듬이질하는 여인󰡕으로 재일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하였다. 한때 조총련 소속의 핵심 작가로 활동했지만 북한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절연하였으며, 1972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계기로 방한하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박정희 군부 독재를 비판해 온 까닭에 한동안 남한에도 들어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가 다시 방한할 수 있었던 것은 23년 만인 1995년의 일로, 1998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조선’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분단된 조국의 운명을 한 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경계인 내지는 중간자로서의 삶을 고수했다. 그의 문학 또한 ‘자이니치(在日)’ 혹은 ‘코리안 재패니즈’라 불리는 디아스포라, 인종적으로는 조선인이되 일본에 거주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국적을 갖지 ‘못한/않은’, 다시 말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개인들의 부유하는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임세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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