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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ORIGINAL]저항 전략으로서의 세속화
『세속화』, Giorgio Agamben, Profanazioni, Roma: Nottetempo, 2005.
[145호] 2007년 11월 05일 (월) 박수령 편집위원 sealover_80@daum.net

지난 2005년 5월 1일, 독일의 출판사 주어캄프는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신간 『세속화』의 독일어본 출간을 기념해 유서 깊은 베를린인민극장을 빌려 출간 기념회를 연 바 있다. 이에 독일의 언론들은 “오늘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 “유럽 전역의 젊은 지성인 세대 전체의 횃불”이라고 그를 추켜올리며, ‘사상가’ 아감벤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이 에피소드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정작 『세속화』의 내용, 특히 10편의 논문 중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세속화 예찬」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책에서 아감벤이 기존 질서에 맞서는 “도래할 세대의 정치적 과제”라고 주장한 세속화(profanation) 전략의 몇몇 사례, 가령 어린 고양이처럼 실 뭉치를 가지고 놀기, 배설(특히 배변)하기의 새로운 사용, 퍼포먼스로서의 포르노그래피 등은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평자는 다음과 같은 촌평을 날렸다. “비판이론계가 드디어 자신의 존 워터스를 발견했다!”(참고로 워터스는 미국의 컬트영화감독으로서 주로 R등급이나 X등급의 전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감벤이 말하는 세속화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감벤의 또 다른 책 『장치란 무엇인가?』(2006)와 이 책을 겹쳐 읽어야만 한다. 『장치란 무엇인가?』에서 아감벤은 “생명체들의 몸짓들, 행동들, 의견들, 담론들을 포획하고, 유도하고, 결정하고, 차단하고, 만들고, 통제하고, 보장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것”을 장치(dispositif)라고 부른 뒤, 이 개념의 ‘신학적 기원’(‘장치’를 뜻하는 라틴어 Dispositio의 어원인 ‘오이코노미아’)으로 거슬러 올라간 바 있다.
아감벤이 ‘장치’의 신학적 기원인 오이코노미아를 강조하는 이유는 장치의 ‘신성한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으로 장치는 신이 자신의 피조물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방법(즉, 신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신성하며, 또 한편으로 장치에 유도되는 인간들이 그 장치 안에 스스로 붙들린다는 점(즉, 장치가 인간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자연’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신성하다. 아감벤이 장치의 주요 사례로 국가, 주권, 특히 법을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좋은 시민’이 되도록 유도당한 ‘시민’으로서의 주체는 국가, 주권, 법 등을 초역사적인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아감벤이 말하는 ‘세속화’란 신에게 속해 있기(또는 그렇게 생각되기) 때문에 신성하거나 종교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물들(장치들)을 다시 인간들의 사용과 소유로 변환시킴으로써 그것을 다시 ‘역사화’하고 ‘탈자연화’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신에게 속한 것을 어떻게 세속화할 수 있는가? 우선 아감벤은 어떤 사물들이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무시’란 신에게 속한 것을 “특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해방시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런 점에서 세속화는 “신성한 것을 완전히 엉뚱하게 사용하는 것(혹은 재사용하는 것) …… 그것은 놀이와 관련된다”
그러나 아감벤은 세속화를 속세화(sécularisation)와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속세화는 신성한 것의 힘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데 그칠 뿐(예를 들어 ‘하늘의 군주’를 ‘땅의 군주’로 변형시킨 근대 주권론을 보라), 그 힘에 별 타격을 주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세속화는 신성한 것에게서 그 아우라를 박탈해 그 힘을 비활성화함으로써 그것이 차지했던 공간을 “공통의 사용”을 위해 복원한다.
사실 놀이(유희)로서의 저항 전략은 아감벤 이전에도, 특히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휩쓴 68년 혁명 이후 많은 사상가들과 활동가들이 언급한 바 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세기 초부터 등장한 정치적 아방가르드(미래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등)의 주요 저항 전략 중 하나도 놀이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아감벤은 자신의 선배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첫째, 아감벤이 놀이를 말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놀이의 대상이 된 사물(신성한 것)의 (재)전유이다. 즉, 신성한 사물을 “공통의 사용”을 위해서 세속화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놀이(유희)는 부르주아 문화에 가하는 일종의 ‘단기’ 충격효과에 가까운 것이었을 뿐, 자신들의 공격 대상을 “공통의 사용”을 위한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아감벤은 자신이 말한 놀이에 스스로 괄호를 쳐둔다. 짧게 잡아도 거의 1백 년 동안 정치적 아방가르드와 싸우면서 자본주의 역시 배운 것이 있었으니, 저항 전략으로서의 놀이를 그들 나름대로 ‘포획’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떻게? 자본은 놀이 자체에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를 부여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전시가치란 전시되는 것(즉, 자본에 의해 포획된 놀이)이 그 자체로 사용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사용가치가 아니며, 그것으로 노동력을 측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교환가치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은 놀이를 ‘스펙터클’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아감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놀이 자체도 에피소드라고, 그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시 정상적인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따라서 아감벤에게 저항 전략으로서의 세속화란, 세속화의 대상뿐만 아니라 세속화하는 행위(놀이) 자체를 매번 포획함으로써 세속화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려고 하는 자본의 장치들에 맞서, 그 모든 장치들이 포획한 “공통의 사용” 가능성을 다시 뽑아내 와야 하는 일종의 내기이자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이다. 그러니 이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가 가능할지 안 할지를 판단하려면 이 내기에 직접 동참할 수밖에. 아니면 아예 다른 방법을 모색하든가. 

 

이재원 (출판기획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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