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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현실에 대한 치유와 애도
[145호] 2007년 11월 05일 (월) 박수령 편집위원 sealover_80@daum.net

고모리 요이치, 김춘미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론』, 고려대학교출판부, 2007.
임철규, 『그리스 비극-인간의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한길사, 2007.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테러의 공포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2001년의 테러 사건이 아니어도 인류의 역사는 9·11테러 이전부터 전쟁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과 살인, 강간 등의 불행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왔다. 2차 세계 대전이후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렸던 현대인에게 9·11테러는 생각의 기저에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공포’로 인식되어 왔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세계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테러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불안감과 공포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기위해 현대인들은 문학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통해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의 역사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이런 관점에서 ‘치유’와 ‘애도’의 글읽기는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되짚어 볼 때 무척 의미있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가 단순한 상상의 산물로 치부되어 흥미로운 글읽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소설에 관한 제대로 된 이론서가 전무하던 한국에 쓰보우치 쇼요의『소설신수』(정병호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가 소개되면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치유’와 ‘애도’의 시선을 제시해줄 두 권의 책이 주어졌다. 한권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변의 카프카』를 처형 소설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주도면밀한 비판적 글읽기를 하고 있는 고모리 요이치의『무라카미 하루키론-『해변의 카프카』를 정독하다』이다. 다른 한권은 그리스 비극의 주요한 세 작가인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래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을 살펴 그리스 비극 전체를 조명한 『그리스 비극-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이다.
고모리 요이치는『무라카미 하루키론』에서 『해변의 카프카』가 오이디푸스 신화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점과 처형 소설로서의 기능이, 일본이 가진 과거 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 소년이 아버지 다무라 고이치에게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관계를 갖는다”라는 오이디푸스적 저주를 듣게 된다. 이 저주는 카프카 소년의 분신의 역할을 맡은 나타카 씨에 의해 ‘아버지를 죽이는’ 행위가 실행된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와 관계는 갖는’ 행위는 카프카 소년이 누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쿠라 씨와 어머니로 상정한 사에키 씨와 성적 교섭을 통해 실행된다. 그런데 이런 성적 교섭이 사쿠라 씨와는 꿈속에서 사에키 씨와의 생령과의 잠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친상간이라는 터부를 깬 행위가 면죄부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고모리 요이치는 밝힌다. 또한 근친상간의 문제는『해변의 카프카』에서 ‘강간’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으며 일본의 침략전쟁하에서의 ‘강간’과도 결부되어 있다고 말한다.『해변의 카프카』라는 텍스트는 카프카 소년에게 면죄부를 가져다 주었던 것처럼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종군위안부’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모리 요이치는『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 소년이 읽는『아라비안 나이트』와 『유형지에서』,『우미인초』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해변의 카프카』가 처형 소설 (특히나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한 성적으로 정숙하지 못한 여성의 처형)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전쟁의 책임을 나카타 씨의 기억을 말살시킨 여교사 오카모치 선생의 (성적으로) 부정한 행실에 전가시키고 사에키 씨의 인생이 담긴 세 권의 파일이 소각되면서 그녀의 죽음과 함께 진행된 기억의 ‘소멸’을 통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해변의 카프카』가 제시한다고 질타하고 있다.
고모리 요이치는 『무라카미 하루키론』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역사적 사실을 그 전체상으로 언어화하고, 그 언어화된 기억에 대해 반성하며, 원인을 명확히 하여 책임 소재를 밝혀내 책임을 지는 것이 소설이라는 장르가 해야하는 근대 사회에서의 역할이라고 역설한다.
고모리 요이치가 ‘치유’로서의 문학 텍스트 읽기를 이야기했다면『그리스 비극』에서 임철규는 ‘그리스 비
극’을 꼼꼼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리스 비극 속에 제시된 ‘오만’과 ‘오만’으로 인한 ‘오염’ 그리고 ‘오염’된 것에 대한 신의 ‘정의’의 구현과 그로 인한 인간의 ‘비극’을 밝혀내고 있다. 15편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글쓴이의 애정어린 시선이 615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의 분량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임철규는 그리스 비극을 영웅서사시의 한 맥락으로 파악하는 문학 텍스트 읽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15편의 그리스 비극 읽기를 통해 ‘그리스 비극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의문시하고 현실의 찢어진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그 현실을 문제시한다’는 베르낭의 말처럼 인간 실존의 비극적 조건과 운명을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을 다루면서 각 작품에서의 ‘제우스의 정의’를 살펴본다. 이 ‘제우스의 정의’는 제우스의 (폭력으로 설정된)힘으로 상징된 번개에서 제우스의 분신격인 여신 아테네의 이해와 설득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런 모습은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변모하는 아테나이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샤를 프랑소수이 자라베르 그림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또한『그리스 비극』에서는『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를 최고의 인간에서 한순간 최하의 인간으로 전락한 인간실존의 불확실성을 부각시키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소포클래스는 표면에 드러난 삶의 아름다움 저편, 아니 그 아름다움의 밑바닥에 또 다른 삶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삶은 ‘언제나’ 무너질 위협을 받는, 아니 무너질 운명에 처해있는 불안정과 불확실 자체이며 우리의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임을 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는 ‘희생’의 역사이며 ‘비극’의 역사이다. 임철규는 야스퍼드의 “진정한 비극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전제로 한다”를 인용해 이를 더욱 확고히 한다. 비극은 일체의 해결이나 화해를 배제하고 있으며 더욱이 ‘망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확언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을 맞는 인물을 향한 코러스의 ‘애도’의 목소리처럼 『그리스 비극』은 ‘치유’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박수령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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