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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ORIGINAL]아감벤의 진화 혹은 새출발
『장치란 무엇인가?』,Giorgio Agamben, Che cos’è un dispositivo?, Rome: Nottetempo, 2006.
[144호] 2007년 10월 01일 (월) 박수령 편집위원 sealover_80@daum.net

  “올해 최고의 책을 뽑으라면 단연 『호모사케르』죠. 정말 놀라운 책입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난 1997년 11월 27일 어느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건축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비릴리오는 이렇게 말했다. 비릴리오의 말이 단순한 허사가 아닌 것은 내노라하는 현대 사상가들, 가령 안토니오 네그리나 슬라보예 지젝 등도 이와 유사한 평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모사케르』가 출간된 지도 벌써 10여 년(이탈리아어 초판은 1995년, 프랑스어본은 1997년에 출간), 이 책의 지은이 아감벤도 꾸준히 진화 중이다.  
  작년에 출간된 『장치란 무엇인가?』는 약 40쪽 분량밖에 안 되는 팸플릿이지만, 아감벤의 진화를 보여주는 최근의 저서이다(『호모사케르』의 4부에 해당되는 『지배와 영광: 경제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에 관하여』도 올해 초 출간됐다).
  일부 사람들(가령 지젝이나 자크 랑시에르 등)은 아감벤의 사유가 염세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감벤은 짐짓 우리 시대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떤 사회적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이 유예되는 ‘예외상태’의 최고 단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벌거벗은 삶(la nuda vita)을 살아가는 존재(다른 말로 호모사케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장치란 무엇인가?』에서의 아감벤은 이와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 저서는 아감벤의 진화를 보여준다.
  아감벤은 『호모사케르』에서 ‘생명정치’라는 개념에 대해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셸 푸코의 논의에 기대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폭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장치’라는 개념을 분석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푸코는 ‘장치’라는 표현을 쓰기 이전에 ‘실증성’(positivité)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이는 그의 스승인 장 이폴리트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이폴리트에게서 ‘실증성’이란 “청년 헤겔이 규칙, 의례, 제도의 무게와 더불어 외부의 권력에 의해 개인들에게 부과되었으며 …… 신앙과 감정체계 속에 내부화된 역사적 요소에 붙인 이름”이었는데, 푸코는 이를 “권력관계가 그 안에서 구체화되는 제도들, 주체화 과정들, 규칙들의 집합”으로 재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푸코는 이 용어 아래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포착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감벤의 해석이다.
  그 뒤 아감벤은 그 자신이 ‘장치’라는 개념의 “신학적 기원”이라고 부르고 있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용어를 분석한다(또한 이것이 아감벤이 말하는 “경제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대략 2~6세기 사이인 교회사 초기에 기독교의 교부들은 삼위일체(왜 신은, 혹은 신의 형상은 하나가 아니고 셋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신의 경제’를 말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 때문에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를 도입했다는 것이다(아버지 신은 아들 예수에게 인간들에 대한 ‘경제’, 즉 관리와 통치를 부여한 것이다).
  기독교 교부들이 ‘오이코노미아’라는 그리스어를 번역하기 위해 도입한 용어가 바로 ‘장치’(dispositif)라는 용어의 어원인 라틴어 Dispositio이다. 이 “신학적 기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장치란 용어는 존재 안에 최소한의 토대 없이도 순수 통치 활동이 그것으로, 그것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명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치들은 항상 주체화 과정을 함축해야 한다. 장치들은 그것들의 주체를 생산해야만 한다.”는 점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에 근거해 아감벤은 푸코의 ‘장치’ 개념에 더 큰 일반성을 부여한다. “나는 생명체들의 몸짓들, 행동들, 의견들, 담론들을 포획하고, 유도하고, 결정하고, 차단하고, 만들고, 통제하고, 보장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것을 장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감옥, 수용소, 판옵티콘, 학교, 고백, 공장, 규율, 법적 조치들뿐만 아니라 펜, 글쓰기, 문학, 철학, 농업, 담배, 항해, 컴퓨터, 핸드폰, 그리고 언어 자체도 장치이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 아감벤은 “생명체(혹은 실체)-장치들-주체들”이라는 3항 도식을 도출한다.
  『장치란 무엇인가?』의 이런 내용이 아감벤의 ‘진화’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추론을 통해서 아감벤은 비로소 주체생산의 이중성(주체화/예속화)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도처에 산재한 장치들은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는 주체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예속화), 이 과정은 장치들(그리고 장치들의 네트워크 자체)과 주체의 맞대응 관계가 무한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주체화). 아감벤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것은 소멸이나 지양이라기보다는 모든 개인적 정체성에 끊임없이 수반되었던 가면극의 차원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산종(散種)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다른 현대 사상가들이 했던 말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답이 같더라도 그에 도달하는 과정이 다르다면 답 자체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아감벤은 자신의 새로운 풀이과정을 통해 ‘저항’이 아니라 ‘세속화’(profanare)를 주체화의 또 다른 방법으로 언급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다른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좌우간 아감벤은 계속 진화중이니, 그에게 관심이 있다면 그의 진화를 계속 주시할 수밖에.

 이재원 (출판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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