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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不偏/不便(불편)한 객관과의 조우
앙드레 슈미드, 정여울 옮김, 『제국 그 사이의 한국』, 휴머니스트, 2007.
[144호] 2007년 10월 01일 (월) 임세화 편집위원 farewell_i@daum.net

  얼마 전 무장납치 세력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한국인들을 조명하던 열기는 이제 수그러들었다. 40여 일이 넘는 납치 기간 동안에도 그들은 곧잘 잊히곤 했고, 그들이 돌아온 이 시점에는 더 흥미롭고 새로운 사건들이 우리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제 누구도 그 불편하고 잔혹한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143호의 기사에서 조명된 바 있듯이, 그것은 포스트콜로니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하는 초대장이며,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우리 ‘한민족’은 세계 속 건전하고 훌륭한 일원으로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평화롭고 온건하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끔찍한 회오리 속에는 말려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테러의 위협이나 전쟁의 소용돌이와는 무관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두 권의 책이 있다. 두 책의 저자는 모두 외국인이다. 한국이라는 우리에게 ‘불편부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객관적인 것을 조우하게 해준다.

  1991년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이 한국에 번역된 이후, ‘상상된’ 민족에 대한 논의의 지평은 날로 확대․변주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동체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이제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앙드레 슈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 또한 그러한 지평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새롭고 기발한 논의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란 책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앤더슨이 근대 서구 유럽 국민국가의 탄생의 과정과 ‘노블(novel)’이라는 매체적 특수성이 갖는 상관성에 대해 천착했다면, 슈미드는 소위 근대화 시기 일본의 식민지로 존재했던 로컬 조선(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겪었던 다분히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상황의 특수성을 전제로 국가 없는 나라에서의 민족의 성립 과정과 요인들에 주목하고 있다.
  슈미드는 민족이라는 표상의 성립 과정을 논증하기 위해 한국 근대사의 전반적 얼개와 시기적 특성을 두루 살펴본다. 풍부한 사료와 정교한 이론틀을 바탕으로 조선의 식민경험과 근대화에의 욕망, 신문이라는 매체, 조선의 지정학적 요건, 언어적 특수성 등을 두루 살펴보는 과정은 친절하면서도 대단히 주도면밀하다. 본문만 600쪽에 육박하는 상당한 분량의 저서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쭉쭉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이 이러한 정교함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는 보통 상이한 영역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슈미드는 이 두 영역의 뿌리가 문명개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질적이며, 이들이 서로 공명하며 발전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본질적으로 친연적인 쌍생아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과 한민족의 기원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는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은 한국 네이션―스테이트의 형성 과정과 정치적인 기획들, 서양에서 ‘노블’이 담당했던 특수한 영역을 신문이라는 사료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식민 제국의 내부에서 세계사의 보편적 이데올로기가 전파되는 과정과 ‘민족’의 발명과의 상관관계가 단지 표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크나큰 변동과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살펴보고 그 발명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 어떠한 상통성을 지니는지 성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성스러운 테러』에서 테리 이글턴은 최초의 테러리스트 지도자 중 하나로 디오니소스를 꼽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변화무쌍하고 유쾌하며 에로틱하고 괴팍스러운데다가 경계를 넘나들어 어디에나 출몰하는 주신(酒神)이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라는 매력을 지녔지만 같은 이유에서 반성 없는 광포함을 지닌 죽음 속의 삶을 수호하는 성자, 야수인 동시에 신인 점에서 바로 인간 자신의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글턴은 지적하고 있다. 이 즉물적인 신의 조형, 그 양가성 속에서 이글턴은 문명과 야만, 신과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하고도 모호한 경계를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턴의 지적이 빛나는 부분은 문학사적 결과물의 기원과 흐름에 따라 인간 욕망의 기묘함을 설파하고 있는 대목이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인 이글턴은 단지 문학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사회 질서, 즉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패러독스 또한 논증한다. 문학과 신화, 사회역사적, 철학적 사유들이 조우하는 이 모든 순간들은 기실 ‘죽음’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죽음과 상상, 우리의 정체성과 정치학은 서로 충돌하고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 병적이고 예술적인 자살 폭탄 테러의 문제로 회귀된다. 이 순간 이글턴은 정치적 자살 테러를 칸트가 순수한 윤리적 행위라고 명명한 것의 기묘한 패러디로 읽어낸다. 또한 프로이트의 욕망이 그러했듯이 쓸모없는 갈망은 어떤 거대한 포부나 그럴듯한 목적론 없이 자기 자신과의 비밀스러운 사랑에 빠져서, 결핍을 통해서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탄생과 함께 주어지는 욕망은 영원히 해방 불가능하고 제거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결핍 없는 욕망을 욕망하는 딜레마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사는 자들”이라는 비문의 소제목은 따라서 적당하다. 쾌와 죽음을 동시에 지닌 디오니소스의 신성함에서부터, 신을 향한 성스러운 공포, 절대적 자유의 개념은 죽음을 배태한 육체를 향해 돌진하는 일종의 테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테러를 ‘악’으로 칭하는 수사에 대한 이글턴의 비판은 광기로 치부되는 테러의 숭고함과 정당성에 대한 씁쓸한 조소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글턴의 글을 제국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다소 복잡한 테러 옹호론으로 읽을지 모른다. 그러나 9.11의 발발과 무관하게, 우리는 주체나 국가, 이념 등의 경계를 다종다양하게 해체해 보이는 이 포스트모더니티,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이글턴이나 지젝, 제임슨 등을 비롯한 일련의 좌파비평가들은 기묘하게도 ‘주체’에 대한 모종의 신뢰를 견지하려 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글턴의 경우, 더 이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한 믿음의 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 이글턴 자신의 풍부한 문학적 교양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견일까. 그만큼 이 책은 테러에 대한 하나의 급진적인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 동시에 문학이 갖고 있는 모종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두 가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씨앗'과 ‘죽음의 씨앗’을 동시에 배태할 수 있는 것은 디오니소스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그 두 씨앗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줄 “명명의 도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줄 척도”가 되어줄 거라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빌린다.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수많은 문장들 뒤로, 다시 문학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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