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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포스트콜로니얼의 아포리아
임세화 편집위원
[143호] 2007년 09월 03일 (월) 임세화 편집위원 farewell_i@daum.net

이슈 : 포스트콜로니얼의 아포리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가 환기하는 실재의 사막―

 

  

 

 

 

 

 

  40여일 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상당수의 네티즌은,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전개하려 했던 그들의 무모한 종교적 열정 및 한국 기독교의 맹목적인 선교지상주의를 맹렬하게 질타했다. 또한 그들이 자초한 것이므로 그들 자신, 더 나아가 기독교계가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태의 원인이야 어떻건 간에 무엇보다 인질들의 목숨이 중요하므로 안전한 석방 내지 구출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든가, 근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일방주의적 세계 정책에 의해 빚어진 사태이므로 미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실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피랍된 한국인들이 출국하면서 인천공항에 세워진 ‘위험지역-아프가니스탄’이라는 팻말 앞에서 촬영한 사진, 현지 이슬람 성지에서 기독교식 의례를 거행하고 있는 사진 등이 그들의 홈페이지로부터 유출되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들이 안전하게 귀국하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거나 기독교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까지 들끓었다. 여기에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에 대한 비난은 항상 따라붙었다.
  물론 이러한 국내의 여론은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및 대응과는 전혀 무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탈레반의 수감자 석방 요구와 미국 정부․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의도적인 방관과 무시 사이에서 철저하게 무력했다. 2명의 인질이 피살된 후에야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직접 협상에 나서게 되고 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이미 네티즌들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었다. 사태 초반에 보였던 열기는 간데없이, 그들은 대개 영화 <디워(D-War)>에 대한 논쟁으로 몰려가 다른 화제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디워>에 대해 벌어진 첨예한 논쟁의 초점 가운데 하나는 애국주의에 맞춰져 있을 터이다. 이 애국주의는 요컨대 ‘순수 국산 기술’에 의한 유사 헐리우드 영화의 생산-세계 영화 시장 도전이라고 하는 감독 및 일부 네티즌들 사이의 공명에 의해 그 실체를 얻고 있다. 말하자면 헐리우드 영화에 근접한 스펙터클의 생산 기술이 관건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헐리우드 영화의 모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디워>의 주요 배우가 미국인이며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어 있다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곧 미국에 대한 선망이라고 할 수 있다. <디워>를 옹호하는 여론은 세계(영화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헐리우드)의 전략을 모방하는 것이 한국(영화 산업)의 진흥과 발전을 위한 첩경이 된다고 믿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곧 미국의 방식을 따르길 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이 부도덕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나 기업은 각각 서로를 부단히 참조하고 또 모방하면서 경쟁․발전하고 있다. 개인의 창의적 역량과 지적재산권 등은 여전히 존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의미의 크리에이티브란 이제 거의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주로 일본의 모델을 참고하여 국가 개발 및 산업 발전을 이룩해 왔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전환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증진시키고 일부 대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육성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한-미 FTA가 체결된 데 힘입어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일층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특수효과 기술로 헐리우드 영화의 외장을 그럴 듯하게 답습해 냈다는 것이 진보이며 도전이라는 <디워> 감독의 주장이 일부 네티즌의 열정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한국인들의 내면에 미국 및 미국적 방식이라고 하는 표상이 범상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미국이라는 표상은 한국인들의 일상에 생각 밖으로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정아라는 한 개인은 한국 사회에서 미국 명문대 학위가 부여하는 권위와 후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입증했다. 또한 이랜드 사태는 한국에 도입된 미국식 고용유연화 제도가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달은 사태이다.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리한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지리상의 국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역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그만큼 깊이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은 미국의 보호 아래 일정부분 우월적인 지위를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생산과 소비가 국제 투자 및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경제 현실 자체가 그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것은 세계의 주요한 통화 및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묵인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한미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하게 일조했던 세력은 한국의 기독교이다.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을 거치며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후원 아래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기독교는 풍요와 번영의 기독교 국가 미국을 대리하는 권위로서 한국인 일반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교인을 늘려나갔다. 지금도 한국의 유력한 기독교 단체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과 한국의 기독교 간 유착 관계가 대단히 남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세계 지배에 안주하는 한편으로 미국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위치를 단적으로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식민주의의 통찰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식민지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 정부에게 있어서 한국은 우방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피랍이 자행된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비밀리에 군사작전을 준비하는 등 한국인 인질들의 생명 및 한국 정부의 입장을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규모의 군대를 파병하는 등 9․11 이후 미국의 세계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던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있어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고작 그 정도, 즉 무시해버려도 좋을 수준이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탈레반을 상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대로 고작해야 탈레반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달래는 방법뿐이다. 이것이 미국이 벌이는 전쟁 내부에서 한국이 처해 있는 객관적인 그러나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위치이다. 달리 말해서 유사-헐리우드 영화 한 편에 환호하는 한국인들의 열정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한국은 결코 미국 혹은 유사-미국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선일이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 피랍 사태가 금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한국인 일반에게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망각 외에는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비극적 상황에 한국이 유사-미국이기는커녕 도리어 미국의 하수인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참여-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황급히 증발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빨리 피랍자들에 대한 관심을 철회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 김만수, 곽경해 오종수 중위, 윤장호 하사 등의 죽음과 이번 피랍 사태로 말미암아 한국인들은 타인의 고통이라고 생각해 왔던 전쟁이나 테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계속 연루되게 된다. 이제까지 한국인들은 항상 TV를 통해 그러한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데 만족해 왔지만 앞으로 자기(들의 일부라고 상정된 존재)의 고통을 이미지로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혹스런 사태에 반복하여 직면하게 될 것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슬라보예 지젝은 이제까지 테러나 참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믿어졌던 미국 본토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영화와도 같은 허구의 형식이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스펙타클의 체험을 통해 (서구로부터 수출된) 테러리즘과 폭력이 창궐하고 있는, (서구를 제외한) 전 세계의 현실로 삽시간에 인도되었다고 말하면서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바 있다. 얼마 전까지 고통을 당했던 피랍 당사자들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런 발언이 되겠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한국인 일반에게는 폭력과 테러가 창궐하고 있는 세계,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그러한 세계를 창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실재의 사막’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사태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것은 환기되며 그리고 또 쉽게 망각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태가 종식된다면 한국인들은 이를 화제로 삼아 한동안 소란스럽게 떠들어 댄 후, 이 사태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해 둔다고 하는, 그리하여 또다시 일상의 저편으로 넘겨버리는 망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유사-미국에 대한 선망이 요원한 것이라는 사실, 한국이 미국의 세계 지배의 패권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진실 또한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인의 일상은 결코 영위될 수 없다. 이러한 아포리아는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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