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9.27 금 20:33
인기검색어 : 등록금 인상, 총장선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문화 > 영화 및 관극평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다
5·18을 향유하는 방식
[143호] 2007년 09월 03일 (월) 임세화 편집위원 farewell_i@daum.net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는 혜성같이 등장한 한 소녀 천재시인에 대해 주목한 바 있다. 5·18 민중항쟁서울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백일장에서 그녀는 5·18 당시 계엄군에게 쫓기던 한 학생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경험에 대해 술회하는 한 광주시민을 페르조나(persona)로 내세운 '그 날'이라는 시로 대상을 수상했다. 경기여고의 학생인 그녀를 가리켜 심사위원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발언이 있다. 즉, “항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도 이렇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녀 천재시인’의 나이 고작 18세, 5·18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히 그러한 역사적 비극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바꾸어 씌어져야 하지 않을까. “항쟁을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사람만이 이렇게 쓸 수 있다.”

물론 '그 날'이라는 시에는 5·18이라는 참혹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어떤 ‘리얼한 것’이 담겨 있을 터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표현을 빌리면 소위 ‘그 날’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그 ‘리얼한 것’, 혹은 ‘진실’이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 혹은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사건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은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뿐더러,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루된 희생자 대부분이 계엄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개인들로서는 5·18이라는 사건 자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5·18은 칸트적 의미의 ‘물 자체’로 남아있으며 언제나 다분히 ‘상징적인 것(the symbolic)’으로 작용하거나 혹은 체험된다고 해도 좋다. ‘그 날’이라는 표제에 과거 시제가 함축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모든 역사가 그러한 것처럼 5·18 또한 집단적·사후적(事後的) 기억으로 소환된다. 그러므로 이 소녀 천재시인이 ‘5·18이라는 사건을 경험할 수 없음’이라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의 페르조나가 사건 자체의 체험보다 사후의 죄의식에 중점을 두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그러한 회고에 대해 특히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컨대 5·18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회고되는 만큼 언제나 남아 있는 자들의 기억에 의해 작동하는 기표이다.

돌이켜 보면 5·18이라는 사건이 체험되는 방식은 대개 그러했다. 5·18이라는 비극은 당초에는 소문으로 전파되었으며,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건 당시 외신기자들이 촬영한 사진·다큐멘터리 필름을 국내에서 비밀리에 전시·상영하는 방식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여기에서 사건 당시, 계엄군이 자행한 폭력과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 이미지가 가져온 충격과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공간이 전혀 아닐 뿐더러 평온한 일상 하에 잠복해 있는 유혈과 폭력이 언제든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불안정한 장소임을 하나의 스펙터클로서 각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금기시된 터부로서 ‘광주의 진실’을 접한 개인들에게 고통스럽게 향유(jouissance)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5·18의 전말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강제로 억압된 진실을 남보다 먼저 알게 되는 데에 따르는 비밀스런 행위와 관계되는 모종의 도착적인 감정이 놓여 있지 않았을까. 여기에 가장 중대하게 기여한 것이 ‘이미지’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존의 5·18 관련 텍스트들이 대개 강제로 억압된 역사적 진실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향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5·18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진 최근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소명의식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만화가 강풀은 미디어다음에 5·18을 소재로 한 '26년'을 연재한 후 후기에 “무조건 재미있게 그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고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현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도록 하자”라는 예사롭지 않은 소명의식을 술회하고 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기본적인 내러티브 역시 그러한 접근방식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5·18에 관한 기존의 일반적인 회고 방식에 충실한 편인데, 그것은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로 구성되고 있다. 말하자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순박한 광주시민들이 어느날 느닷없이 밀려들어온 계엄군에 의해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것이다. 광주시민=선, 계엄군=악이라는 이분법 하에 잔혹한 진압과 학살의 시퀀스가 덧붙여지고 있다. 이 때 기존의 여러 5·18 관련 영상의 클리셰가 상당 부분 반복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구성과 전개는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관객으로 하여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낸다. 불가해하고 당혹하기 그지없는 사태에 직면하여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합리화하여 이해 가능한 것으로 구성하는 형식, 이것이야말로 피터 브룩스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에서 정의했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형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을 멜로드라마로 목격하면서 관객은 진압과 학살의 바깥 즉 관객석 속에 안주할 수 있다. 그러한 비극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카타르시스라고 했을 것이다. 누구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 곧 비극의 민주화가 현대 비극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던 영국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관점에 따르면 5·18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일반적인 개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결코 반복될 리 없는 단독적인 역사적 사건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27년 전의 5·18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단절되고 또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울먹이던 신애(이요원)의 목소리만이 남는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도리어 그들을 매장해버리는 모종의 합리화가 되는 것은 아닐까. 도리어 눈앞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미쳐버린 한 소녀의 모습으로, 즉 불가해한 사건 그 자체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5·18에 대한 보다 솔직하고도 겸허한 반응이 아닐까.

임세화 편집위원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김대욱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우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