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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가족이란 무엇인가?
[222호] 2022년 11월 07일 (월) 김민정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가족 신화

   슈퍼맨이 돌아왔다, 살림하는 남자들, 미운 우리 새끼, 동상이몽, 호적 메이트, 결혼지옥 등. TV 리얼리티쇼에서도 가족 예능이 대세이다. “가족이니까”와 “가족이라도” 사이의 경계를 시험하듯 가족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현실을 쏟아내면서도 그런 다양성이 가족의 이름으로 포용되길 바라는 기대가 담긴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풀어야 하며 가족을 벗어날 대안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해 절대적 믿음과 기대를 하는, 가족 신화라 부를법한 우리 사회의 가치와 태도는 ‘근대’ 시대의 산물이다. 출생 신분질서를 내세워 통치하던 봉건국가나 혈통집단 공동체가 영토권을 행사하던 부족사회에서 가족은 친족집단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하위단위였다. 사회가 친족의 논리를 넘어서 국민국가 체제로 변화하면서 가족은 개인을 국가와 바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국가의 입장에서 가족은 인구를 재생산하고 필요한 인력으로 교육하고 의무를 다하는 시민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며 의존적인 인구를 돌보는 기능을 한다. 행정과 통치 대상인 인구가 국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가족 신화가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성은 증가하고 거주 단위는 다양해지며 가족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가족이란 무엇인가?

   건강 가정?

   가족(family)은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가문(clan)이나 가정(home), 가구(household)와 혼용되며, 최근에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가정’을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양육·보호·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건강가정’을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으로 정의한다. 가정 공동체를 통해 개인의 욕구 충족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정책 방향은 가족 신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법률상 가족이 없는 사람이나 가정으로 인정되지 않는 생활단위는 그냥 배제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가정은 경험적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관련 통계는 가구라는 거주 단위로 집계된다. 1인 가구의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2018년에는 “1인 가구”도 가족정책에 포함됐다. 이어서 동거나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려던, 미약하나마 포용적인, 이전 정부의 정책변화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건 현 정부에서 없던 일이 됐다. 생활동반자법은 1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이성애 규범을 따르는(최근 더해진 조건으로는, 출생으로 인한 한국인) 부부와 이들의 자녀만으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가족’으로 보는 국가의 가족 정책은 비현실적이고 차별적이다. 시행이 미뤄지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 방송인 사유리로 공론화된 비혼 출산, 최근 드라마에도 등장한 미혼부의 자녀 양육 등, 정상가족의 틀은 점점 더 ‘개인의 욕구 충족과 인간다운 삶’을 옥죄는 처벌도구가 되고 있다.

   젠더 너머의 가족

   가족 내의 고정된 젠더 역할은 개인과 국가를 매개하는 가족 기능의 핵심이었다. 가족은 돌봄 노동(주로 여성이 제공하던)과 재정 지원(주로 남성이 제공하던) 둘 다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가족 내 성별 분업은 상호보완적인 젠더 역할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가족 내 여성 이미지와 고정관념은 직업 위계와 친밀한 관계에서 불평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정된 젠더 역할을 전제하지 않는 가족은 가능할까? 정상가족의 틀을 깨고 이성애 규범이나 성별 분업, 법적 결혼에 기대지 않는 친밀한 관계를 제도화하는 국가들은 늘고 있다. 이때 국가는 가족 단위로 개인을 등록하거나 가족을 유형화해 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표(BLI)” 공동체 항목에서 2020년(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다고 98%가 응답해) 1위를 한 아이슬란드는 동성결혼은 물론 개인의 젠더 결정권도 허용하며 혼외 출생아 비율이 70%에 달하는 국가이다.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개인 간의 친밀한 관계망 형성을 돕고 사회적 고립도를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 젠더 너머의 가족을 구성할 자유가 허용될 때, 가족은 동등한 시민 간의 자발적이고 친밀한 결합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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