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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병렬 연결
―신종원,『습지 장례법』, 문학과지성사, 2022.
[222호] 2022년 11월 07일 (월) 김요섭 문학평론가
   
  △ 사진 = YES24  

   족보는 부계적 가족 질서의 가장 질기고도 강력한 상징이다. 하나의 기원에서 시작하는 족보는 뿌리처럼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넓게 퍼져간다. 마치 수면 아래로 내려앉는 그물처럼 넓게 퍼지는 가계도는 후대의 삶을 옥죄는 수직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부계혈족의 경로를 따라 내려오는 역사의 압력은 한국 문학에서 수없이 변주돼 왔다. ‘아버지 없는 세대’로 불린 이들이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계보였고, 때로는 전쟁과 학살의 은폐된 기억을 말할 수 있는 재현의 우회로였다. 그리고 오늘날 부계혈족의 수직적 가계도는 가부장제의 억압을 전복하는 여성 가계도라는 다른 역사와 경합하고 있다. 정세랑, 황정은, 최은영 등의 소설들에서 반복된 여성 가계도의 상상력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단선적(單線的)이자 단성적(單性的)인 역사를 복수화한다. 이러한 복수(複數)의 역사성은 가부장제가 승인한 하나의 역사에 맞서는 복수(復讐)이자 그 폭력의 구조에 의해 목소리를 잃은 자들과 연대하는 수평적 힘이다. 이러한 수직적 계보에 맞서는 수평적 힘의 서사를 부계혈족의 역사 안에서 찾으려 한 작품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바로 신종원의 첫 장편소설 『습지 장례법』이다.

   『습지 장례법』은 작가 자신의 가문인 영산 신씨의 가계도를 읽어내는 가족사 소설이자, 그의 등단작이었던 「전자 시대의 아리아」부터 반복·변주되어 온 ‘리듬-역사’의 한 단계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조부의 장례를 위해서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한때 넓은 늪지를 품고 있던 가문의 땅을 물려받는다. 하지만 그는 가문의 유산을 큰 짐으로 느낀다. 비밀스러운 전통에 따라 늪에 가라앉은 조상의 관처럼, 그 가문의 역사에 자신 역시 가라앉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조부가 땅을 남겨준 것을 가문의 전통으로 자신을 옭아매려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오래전 조부가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읽게 되면서 그의 생각은 변한다. 편지 속 조부는 소설가 자신처럼 가문의 역사라는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이였다.

   조부에 대해 그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소설가가 가문의 다른 역사를 돌아보도록 만든다. 그는 조부를 포함해 가문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네 사람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5부로 나뉜 소설은 장례의 절차를 따르지만, 2부인 ‘수시(收屍)’가 불균형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입관을 위해 죽은 자의 몸을 바로잡는 절차인 수시에는 한국 전쟁기부터 소련의 적백내전, 조선, 원제국 시대의 고려까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을 보여준다. 4개의 절로 나뉘는 2부는 내용 면에서 선후를 따질 수 없게 병렬적이다. 소설가는 수직적 족보 속에서 서로 포개어지는 수평적 역사를 발견한다. 이는 그의 작품 세계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반복과 변주, 즉 음악적 세계의 순환을 보여준다.

   신종원의 작품들은 그동안 역사와 기억을 음악과 전자 신호, 사물과 공간을 통해 독특하게 재현해 왔다. 한 장면을 사물의 역사나 신체의 구조, 음악의 역사와 신화적 세계에 대한 강박적인 묘사를 통해 반복하며 변주되는 특징적인 문장들은 『습지 장례법』에서도 이어진다. 소설 속 시대와 자주 엇갈리는 문장들은 하나의 장면을 각기 외형으로 변주한다. 신호와 음악, 신화와 역사라는 이질적 이미지가 하나의 장면으로 포개진다.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작동했던 신종원 소설의 리듬은 『습지 장례법』에서 역사의 무게에 맞서는 각기 다른 변주, 즉 가문의 그물에서 벗어나려 한 이들의 역사로 이어진다. 가문이라는 순환, 그 반복되는 림보의 감옥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한 변주들을 통해 단조로이 반복되는 음이 아닌 음악으로 완성된다. 『습지 장례법』은 그의 단편 소설을 거치며 탐구해 온 ‘리듬-역사’가 결국 이해와 사랑으로 향하는 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내리누르는 역사의 무게를 넓게 퍼져가는 화음으로 바꾸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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