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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산책과 냄새
[222호] 2022년 11월 07일 (월) 권석희 편집위원
   
  △ 다양한 섬유유연제들을 판매하고 있는 마트 가판대 (사진출처 :  권석희 편집위원)  

   사람은 누구나 특별히 더 예민한 감각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의 경우는 후각인데 이 감각은 결국 전염병을 피하지 못했음에도 후유증 하나 없이 견고하다. 그래서인지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다. 나의 능력은 냄새를 잘 맡는 것이다, 라는 작은 자랑거리. 무엇보다도 먹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후각은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요즘은 후각을 통해 산책의 즐거움을 배우고 있다. 개들은 냄새 맡기 위해 산책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네를 잠깐 걸을 때에도 사방에 잠재해 있는 냄새들을 의식하며 걷는다. 당연히 개들만큼이나 뛰어난 후각 기능을 가지진 못했기에 그들이 맡는 냄새의 절반도 느끼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 스쳐지나갈 때 풍기는 향수 또는 섬유유연제 냄새, 기온의 높낮이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들의 풀 냄새, 차들이 지나갈 때 잠깐 스쳐지나가는 연료 냄새, 한 블록 한 블록 지날 때마다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가게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다양한 냄새들을 맡는 일은 즐겁다. 이러한 일이 즐거운 이유는 나에게 있어서 후각이란 그 어떤 감각보다도 더 생생히 현장감을 구축할 수 있게 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일까, 한때 나는 ‘일본 냄새’ 찾기에 몰두해 있었다. 2016년에 오사카와 교토 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쭉 그랬다. 간사이공항에 들어선 순간 낯설지만 포근한 냄새가 온 사방에서 풍겨왔다. 그 냄새는 공항뿐만 아니라 여행하는 내내 곳곳에서 맡을 수 있었는데, 가장 유사한 게 뭘까 떠올려 보면 구제 옷가게가 그려졌다. 겹겹이 쌓인 옷감뿐만 아니라 생활감이 잔뜩 묻어 있는 냄새. 한국으로 돌아와 포털사이트에 일본 냄새를 검색하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갖가지 게시글이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내가 ‘일본 냄새’라 인식한 것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라는 것이다. 더 일찍 검색해볼 걸, 후회했지만 이미 그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그 섬유유연제를 구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집착하듯 그 냄새와 비슷한 국내 제품을 찾아보았고 결국은 찾는 데에 성공해 구매하기까지 했으나, 결과는 내가 기대한 것과 매우 달랐다. 구매한 섬유유연제로 옷들을 세탁한 뒤 맡게 된 건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향이었다.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고 반가워하기에는 매우 낯설기만 했다. 꾸역꾸역 사용해 한 통을 다 비웠지만, 그 뒤로는 일본 냄새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맡았던 건 단순히 제품 하나로 복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현장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요즘은 향수도, 섬유유연제도, 섬유탈취제도 모두 어떤 냄새를 복구시키려는 마음보다, 어떤 향일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고른다. 연꽃향 섬유유연제에서는 꽃향기가 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가 나서 이불 빨래를 돌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디 계열 향수에서는 나무에서 정말 이런 냄새가 났던가, 싶지만 따뜻하고 건조한 향이 그 이미지와 나름 잘 맞아떨어진다.

   사람이 만들어 낸 향은 언제나 한계가 있지만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진짜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지고 싶은 냄새와 가질 수 있는 냄새는 다르다. 그럼에도 내가 바랐던 것은 현장과 환경이 똑같이 구축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작은 통 속의 액체는 그것들을 다 담을 수 없다. 거의 비슷하게 묘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실패할 것이다. 내가 사랑한 것은 냄새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책을 즐기게 되었을 것이다. 계속 걷고 걸으며 각각의 냄새에서 읽히는 생활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아서, 그 냄새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순간이 좋아서.

   과학을 사랑하는 친동생은 냄새에 집착하는 나를 보며 냄새분자가 비강 속 후각수용체에 붙어 전기적 신호로 전환되고 이것이 대뇌로 이동해 냄새를 인식하게 되는 거라는 과학적 지식을 알려주었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산책은 내가 사랑하는 풍경들이 잠시 내 몸속에 들렀다가 가는 일인 것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아주 작은 분자 형태이지만 분명히 나와 접촉하고 있다.

   지금은 집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 냄새와 나무 냄새가 난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향수 냄새도 난다. 돌아가는 길에는 이불 가게와 화장품 가게, 마트, 지하철역이 있다. 사람들도 아주 많다. 복잡하고 시끌시끌하고 제각기 다른 형태의 냄새로 가득 찬 동네. 이런 동네야 어디든 있겠지만 언젠가 다른 동네에서 살게 되는 때가 온다면 분명 이 냄새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풍경들이 잠시 나와 한 몸이었던 순간들은 쉽게 잊을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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