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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칼럼] 미-중 패권경쟁과 광해군, 인조의 외교 정책
[220호] 2022년 05월 09일 (월) 김태구 동국대학교 북학학과 강사

   한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종료된 지 얼마 안 되어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당선인과 통화를 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당선인 중 가장 이른 시간인 수락 인사 5시간 만에 미국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나아가 5월에 취임하게 되면 미 대통령이 먼저 한국에 와서 양국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도 개표 다음날 바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직접 당선인 측에 보내서 인편으로는 가장 먼저 인사를 했다. 더구나 윤 당선인이 쿼드(Quad) 회원국인 인도 총리 하고까지 전화 통화를 하자, 시 주석은 한국 차기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먼저 수화기를 들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동북아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 1, 2위 강대국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는 불편한 기쁨을 뒤로 하고, 향후 가열되는 미-중의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이 어느 쪽을 선택 당할 수도 있다는 절박한 고통의 우려를 자아낸다. 현하의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 정세는 17세기 발흥하는 후금과 명과의 패권경쟁 속에서 조선이 감내해야 했던 중립과 택일의 긴박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임진왜란의 7년 동안 조선 전체를 뒤흔들었던 전쟁 기간이 종식되고 한숨 돌릴 틈이라도 있는가 싶은 순간, 북방에서는 후금이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 대륙 정복을 꿈꿨고, 이를 위해 조선에게는 명나라와의 친선관계를 중지하고 후금과 우호관계를 수립하며, 양국관계는 형제관계로 격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명나라 또한 조선은 임진왜란 기간에 거의 멸망직전이었는데 명이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반격하기 위한 조선군 파병을 압박했다.

   조선 광해군은 17세부터 임진왜란 동안 전국에서 일본군과 직접 항전하며, 국민의 피폐한 삶을 실 체험한 몇 안 되는 국왕이었다. 명의 파병 요구에 일본의 재침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립정책을 추구하여 국민이 전화에 휩쓸리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명 만력제가 급박하게 지원병을 요청하자, 마지못해 외형상 조선군을 보내되, 규모도 줄이고 지휘관은 무신이 아닌 중국통 문신 강홍립을 임명했고, 전술은 김경서, 김응하 장군이 담당하도록 했다. 조선 파병군은 직접적인 전투는 피하고자 했으나, 결국 명의 강요에 의해 사르흐 전투에 가담했다. 여기서 김응하 부장은 직접 전투를 수행하여 전사하고,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하여 인질이 되었다. 이는 그나마 양 강대국의 대결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한 희생양이었고 그 기간 동안 조선반도는 불안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의 정권이 바뀌었다. 서인 정권은 광해군이 어머니를 폐위하고 동생을 죽였으며, 무리한 궁궐 복원 토목공사를 강행하여 국민 삶을 어렵게 했다는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인조를 옹립하였다. 대해 후금과 명은 조선의 새로운 대외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광해군 정권과 달리 상대국 쪽으로 경도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하였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문제는 후금이 이전 광해군 시절의 후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인조 집권 시의 후금은 청으로 개국하기 직전이었고, 중국 본토를 직접 공략하기 직전이었다. 국명을 청으로 개칭하면서 국력은 명의 국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청 쪽에서 조선에 원병을, 그것도 육군이 아닌, 수군 6천 명과 12개월 치 군량미, 전함까지 요청하는 국제정세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흔히 광해군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와 균형정책을 슬기롭게 추진하여 조선반도를 전화에서 구했고, 인조는 청과 명사이에서 일방 외교를 추진하여 병자호란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조 집권기는 중립 외교든 균형 정책이든 고려할 틈도 없이 양자택일의 압력이 가해진 시기였다. 광해군 정권은 한시름 돌리며 양국을 관찰할 시간이 있었으나 인조 시기는 청이 명을 공격하기 직전이었고, 양국 중 택일을 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강요가 가해진 시기였다.

   현재의 동북아 포함, 전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은 조선조 광해군 시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미국을 압도하고자 하나 아직은 미국을 분명히 제압하고 있다는 객관성이 부족하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예의 주시하면서 균형과 중립으로 양쪽을 고려할 수 있는 시기이다.

   문제는 향후 5년, 10년 또는 그 이후의 미-중 패권 향방이다. 만일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기 시작한다면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명확히 한국이 입장을 취하라는 생존적인 양자택일의 외압을 받을 수도 있다. 이때에는 균형이건 중립이건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조와 모든 신하들이 송파에서 머리를 맨땅에 부딪히며 항복했던 치욕을 또다시 당할지도 모른다는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중 패권경쟁을 주시하고, 내적으로 양측이 무시할 수 없는 국력 강화의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사명을 우리는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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