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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바야흐로 테마연구
전봉관, <경성기담>, 살림, 2006 / 스티븐 컨, 임재서 역, <사랑의 문화사>, 말글빛냄, 2006.
[135호] 2006년 09월 04일 (월) 조형래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2006년 서울의 한강변을 배회하는 한 마리 괴물이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 지극히 수상한 시절입니다. 그러나 괴물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괴물일 테지만, 정작 사람을 잡는 것은 현서가 살아있다는 박강두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요.

기실, 괴물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그것일 테지요. 이를테면 포름알데히드를 싱크대 하수구에 쏟아버리라고 명령하면 따를 도리밖에 없는 시스템 자체일 것입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도록 만드는 그러한 상황이 낳는 부조리. 그 이면의 어둠에서 괴물은 비로소 활개를 치며 헤엄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현서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괴물은 박강두의 말을 미친 소리로 치부하는, 그러한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는 각 개인의 내부로부터 빚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현서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 가족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구원은 그러한 상황의 희생자, 현서 자신으로부터, 그러니까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구하려는 의지를 결코 놓지 않는 약하디 약한 개인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감독은 작고 약한 존재가 지녀가지고 있는 구원의 힘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스크린 상에서는.

좬황금광시대좭(2005)를 통해 금광개발을 통한 일확천금의 주박에 사로잡혔던 식민지 시대 개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그려낸 바 있었던 전봉관은 좬경성기담좭에서 식민지 시대의 신문과 잡지의 기사에서 선별한 각종 살인사건과 스캔들을 재구성하여 만담에 가까운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전체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머리 없는 유아의 시체가 경성 장안에서 발견된 사건, 안동에서 자행되었던 일본인 순사 살해사건, 칼로 난자당한 조선인 하녀, 교주의 권위에 거역한 신도들을 가차없이 살해한 백백교 사건 등 식민지 시대 당시 조선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사건 4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부에는 존경받는 교육자이자 민족지도자로 알려졌던 박희도의 여제자 정조 유린 사건이라든가, 이화여전 교수의 애정 도피와 귀국 등과 같은 치정에 관련된 스캔들, 거액의 부채를 떼먹고 베이징으로 도망간 순종의 장인 윤택영의 추태, 거액의 유산의 관할 문제를 놓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벌어진 이혼 소송 등의 금전에 관련된 추악한 에피소드, 마지막으로 박인덕과 최영숙이라는 신여성의 수난사와 같은 당대를 풍미한 일대 사건을 모아 놓았습니다. 워낙 당대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들만 모아놓았으니 만큼 쉽고 가볍게 읽히는 편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풍속과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평이한 수준의 대중교양서라고 할 수 있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사료적 가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식민지 시대의 일상과 풍속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일제 치하 당시의 살인사건과 스캔들에 관한 기록에 대한 해제를 읽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특히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는 여러 모로 흥미롭습니다. 일본인 순사가 살해당하고 유례없이 치열한 수사 끝에 조선인 청년 네 명이 범인으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상고심에서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날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진범은 잡히지 않은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것은 조선 각지가 공권력의 하수인을 살해한 진범이 쉽게 몸을 감출 수 있었던 암흑의 공간이었음을 의미하며, 역으로 그것을 규명하고 처벌할 수 있는 공권력 자체의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지 않았던 장소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예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백백교 사건과 같은 야만이 도처에 편재하지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정당성이 부정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식민지라는 상황이 초래한 딜레마입니다. 그러므로 전봉관이 그리고 있는 백주의 암흑은 어디까지나 조선 내부의 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 당국의 경찰이라는 존재는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를 할 수 없다고 미리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라는 시스템에 매몰되어 서로를 돌보지 않고 백주의 암흑이라는 괴물을 방치하고 있는, 그 누구라도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는 상태, 그것이 전봉관이 묘사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일상인 것입니다. 다만 오로지 인간의 본성이 문제될 뿐이겠지요. 그러므로 그것 또한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괴물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좬경성기담좭은 좬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좭 이후 근대문학 연구자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던 소위 풍속사 연구의 무의미성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봉관이 표방하는 사람 냄새 나는 인문학, 혹은 개인사의 복원이란 좬경성기담좭만 놓고 본다면 사실 옛 신문·잡지 등에서 긁어모은 여러 가지 선정적인 사건을 만담으로 풀어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에피소드의 말미에 소위 인생을 체관한 듯한 몇 가지 경구를 삽입한다고 해서 만담이 인문학이 되거나 센세이셔널한 사건 풀이가 온전한 개인사의 복원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도리어 미리 주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상투화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사의 복원이 사실상 어느 누구에게나 혹은 어디에나 내재되어 있는 괴물을 확인하는 식의 일반화로 향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더욱이 센세이셔널했다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 당대의 맥락에 위치하면서 활발하게 의미부여 혹은 구성되는 공적 사건으로 공유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좬경성기담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뭔가 불충분한 것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공적 사건의 사적 격하 내지는 상투화, 바로 그것이겠지요. 결코 개인화나 사비화(私秘化)로는 될 수 없는.

스티븐 컨의 좬사랑의 문화사좭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 서구의 중요한 문학·미술작품에 재현되어 있는 소위 “사랑의 문화(The Culture of Love)”를 그야말로 방대한 규모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일한 테마가 총 기다림·만남·조우·육화·욕망·언어·폭로·입맞춤·젠더·힘·타인들·질투·자아성·청혼·결혼식·섹스·결혼생활·종말 등의 18가지의 소주제로 나뉘어 재구성되고, 논거로 동원된 무수한 텍스트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면서 어떤 일관된 세계사적 흐름 내부로 수렴되는 지경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찬란한 성좌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의 역사에 관한 어떤 진보의 도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을 연상시키지만(예술의 종언을 선언한 이후의 예술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순적입니다만), 스티븐 컨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하이데거의 유명한 방법입니다. 저자 자신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하이데거가 본래적-비본래적 구분에 따라 현존재의 실존을 해석했던 방식에 따라 사랑의 요소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과거에 우세했던 사랑에 대한 종교적·도덕적 의미부여가 현대로 오면서 점차 미학적·실존적 의미부여에 의해 대체되는 형태로, 그러니까 자아의 실존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사랑의 역사는 억압의 상태에서 실존 자체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변천에 다름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사랑 및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이 시대의 진보에 따라 점차 자유로워졌다는 것입니다. 개인 혹은 주체의 해방을 서구적 근대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상당 부분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방대한 분량에 비해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좬사랑의 문화사좭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텍스트를 섭렵하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저자 자신의 박람강기와 분석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부록에 수록된 좥남녀 주인공의 나이좦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서구의 중요한 소설에서 채택하고 있는 남녀 주인공의 나이를 도표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이 책을 통틀어 이처럼 사랑에 관한 현격한 변화의 징후를 발견하도록 하는 대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좬사랑의 문화사좭 또한 개인의 해방을 내세워 그것을 억압했던 그 무엇을 괴물로 치부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한 스티븐 컨은 사랑의 사유화를 중시하면서 그것이 가지는 공적 의미가 점차 축소되는 과정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본 것이 아닐까요. 리처드 세네트가 좬공적 인간의 몰락좭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개인의 자유를 해방하는 역사적 과정은 필연적으로 공공영역의 축소 또는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정신분석학이 제공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성적 관계만큼 타자의 욕망이 개입하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연애와 결혼의 과정에 개입하는 외부란 언제나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컨은 이를 애써 외면했던 것이 아닐까요. 사랑만큼이나 근본적인 관계를 오로지 소위 주체라는 개인의 소유로 환원하기. 그처럼 위협적인 괴물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조형래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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