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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Demolition Site (데몰리션 사이트) 작업일지
[218호] 2021년 11월 08일 (월) 정지현 사진작가

   2013년 9월 1일

   ‘지난번 고생하며 며칠 밤 동안 칠해놓은 빨간 방이 흔적도 없이 묻혀 버리면 어쩌지?’

   우려했던 모든 걱정이 지난달에 모두 현실이 되었다.

   재개발 구역은 인천 아시아 게임이라는 국가적 경사에 미관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예상보다 일찍 모든 철거가 마무리되었다. 예상치 못한 빠른 철거로 욕심을 부려서 만들어 놓은 여러 곳의 빨간 방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Demolition Site 01 Inside_Pigment print_120x160cm_2013  

   2013년 6월 6일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빨간 방의 흔적을 찾아 몇 시간 동안 철거현장을 헤매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철거되어 매몰된 빨간 방의 흔적을 쫓아 맴돌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서 사용한 페인트 비용과 고생한 시간이 떠오른다. 작업실로 돌아와서 답답한 마음에 컴퓨터를 켜고, 습관적으로 각종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 철거지역의 지명을 검색한다. 눈에 띄는 새로운 뉴스가 있었다. 무리한 불법철거 강행으로 일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유출되었다는 기사였고 사진이 낯익은 그곳은 지난달에 밤새 페인트 작업을 진행한 곳이었다. 순간 몸이 얼어붙어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한동안 머릿속에서는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 라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만 맴돌았다. 도시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며 늘 부딪히던 지점은 도시의 깊숙한 곳에 침투하여 작업을 진행하다 나도 모르게 도시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에 내가 노출된다는 것이다. 동료작가들과 ‘대한민국에서 도시 작업을 하며 사회운동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작가는 비양심적인 것일 수도 있다’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 Demolition Site 작업과정  

   다시 2013년 9월 1일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한 달간 많은 고민을 했지만, 왜 내가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답은 여전히 찾지 못하였다. 어쩌면 지금의 작업이 재개발로 사라진 나의 어릴 적 동네의 망령을 쫓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새로운 철거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은 고요했다. ‘허가를 받고 촬영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철거가 완료되기까지는 몇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정식허가를 받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면 오히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부딪혀보자. 몰래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발각되지 않기 위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조도가 낮은 작은 손전등 하나를 사용하는데 작업이 마무리되는 상황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보이는 반짝반짝 거리는 빨간색과 파란색 불빛, 익숙한 듯한 사이렌 소리. 분명 경찰이다!

   2014년 1월 15일

   몇 달간의 작업은 이틀 전 경비 팀장님의 전화를 받기까지 순조로웠다. 경비 팀장님은 철거가 진행되어 빨간색 방이 외부로 드러나면 사진을 찍어서 핸드폰으로 보내줄 정도로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실수를 하였다. 철거현장의 평소보다 이른 시간의 방문은 끝까지 버티던 마지막 주민과 만나게 되는 불상사로 이어졌다. 보통 철거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은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대다수는 공사를 방해하여 조금이라도 많은 보상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고 마지막으로 남았다는 주민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평생 살던 동네가 재건축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과 같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감을 한 것일까? 그 원주민은 수고하라는 말까지 남기며 돌아갔다.

   다음 날. 경비 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왠지 불길했다. 경비 팀장님은 경직된 어조로 “정지현 작가님, 지금 이 시각부터 작가님의 현장 방문은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접근하실 경우 법적으로 업무방해, 불법침입으로 형사적 처벌을 받게 되니 접근하지 마십시오!”라고 경고했다. 나에게 이별을 안겨다 준 그 마지막 원주민의 임무는 “더 큰 보상금을 받고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 Demolition Site 04 Outside_Pigment print_120x16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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