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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촉각의 샤머니즘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218호] 2021년 11월 08일 (월) 박인성 문학평론가/부산가톨릭대학교 인성교양학부 조교수
   
  △ 사진출처 : YES24  

   한강의 신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위해서는 우선 소설 속 서술자인 소설가 ‘경하’가 놓인 정서적 상황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경하는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역사적 학살의 기억을 소재로 출간한 자신의 전작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다, 그 소설을 써 내려가며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해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무기력증에 견디며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다. 한강의 전작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환기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대체 누구와 작별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이미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경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과거 만주나 베트남에서도 발생했던 역사적 학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온 친구 인선의 전화다. 지금 인선은 고향 제주에 내려가 목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작업 중에 두 손가락이 잘리는 큰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그런 인선이 경하에게 부탁한 것은 오늘 당장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제주 집에 홀로 남은 새의 목숨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서두로 시작한 소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경하가 인선의 부탁으로 무작정 제주도로 향해 폭설을 헤치고 자칫 죽을 고비를 거쳐 인선의 집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겨우 도착한 그곳에서 서울의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의 생령(生靈)과 만나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의 이야기다. 다소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인선과의 만남, 그리고 인선의 입을 통해서 인선의 가족사를 포함한 제주 4·3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 속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생령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다소 샤머니즘적인 소설적 시공간, 그리고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서술 과정을 통해서, 이 소설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애도에 대한 의지적인 거부이자, 망자의 기억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우울증적 정동의 소설적 형상화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정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역사에 기록된 것 이상의 죽음들을 서술해야 하는 소설가가 기꺼이 타인의 고통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고통에의 민감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감성은 소설의 서두에서 인선의 잘린 손가락을 다시 붙이는 수술 이후, 손가락의 신경이 이어지고 잘린 부위가 제대로 접합될 수 있도록 일정 시간마다 바늘로 계속해서 손가락을 찔러야 하는 고통과 상동적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렇게 지속적인 통증의 환기 속에서만 살아 있는 우리는 잘려진 자신의 신체처럼 역사 속에서 학살된 자들과의 의지적인 공존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소설이 망자와의 공존, 더 나아가 생령처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귀를 기울이기 위해 소설적 시공간을 구성하는 것처럼, 경하의 직업인 소설가란 사실상 샤먼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하가 인선의 부탁 때문에 폭설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 자신의 육체 위로 떨어져 한순간에 녹아버리는 눈송이 하나에 모든 촉각적인 재현을 집중하듯, 이 모든 소설적 과정은 선연한 촉각적 재현으로만 가능한 샤머니즘적 초혼(招魂) 행위가 된다.

   한 가지의 작은 의문은 남는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과 그 소설적 형상화에 대하여 납득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이 글은 소설로서 쉽게 읽히는 텍스트는 아니다. 그것은 첫째로 소설적 구성이 인선의 어머니 정심에게서 인선으로, 다시 인선에게서 경하로 바통처럼 넘겨지며 발생하는 메아리 효과 때문이다. 둘째로 독자로서의 우리가, 일상적 삶 속에서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고통과 자기연민을 과대평가하는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죽음에 기꺼이 다가서기 위하여 고통에 압도된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령 같은 타인들과의 접촉을 예민하게 촉각하면서, 이미 죽은 자들의 기억을 몸으로 앓아내는 샤먼적인 삶이 한강에게 있어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더 윤리적인 삶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요구라는 생각도 든다.

   독자들은 한편으로는 사력을 다한 한강의 소설적 작업에 대하여 경탄을 할 수도, 혹은 이 생생한 고통의 감각 앞에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주저함이 곧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우리의 솔직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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