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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팬데믹 이후 : 민주주의의 익숙한 위기
[218호] 2021년 11월 08일 (월)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 Vasan Sitthiket, <너의 눈이 먼 모습>, 2002.  

   국가의 목적

   눈으로 보이는 형태가 있든 없든, 인공물 대부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연필은 쓰기 위한 것이고, 도로교통법은 도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근대 국가와 정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발명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항상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는 산이나 강처럼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으로 느껴지고, 어느 순간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화적 생산물이 자연적 사물로 이해되는 순간, 비판적 사유는 불가능해진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인 동시에, 목적과 수단의 위계구조에서 최상위에 위치한다. 국가란 그 최종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국가의 모든 활동은 그것의 수단으로서 수행된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경우, 즉 국가가 자유와 평등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우, 그 국가는 비민주주의적이라 규정된다.

   한국에서 자유와 평등은 뻔한 소리로 취급될 뿐, 국가의 실질적 존재 이유로 고려되지 않는다. 극우파는 안보와 경제 성장을 최종 목적으로 주장하고, 자유와 평등은 그러한 목적에 종속된 부가 가치처럼 간주된다. 현 집권 세력의 기원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있는데, 이들이 말하는 민주화는 형식적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이들 역시 ‘국가의 첫 번째 목적은 경제 성장’이라는 개발 독재 시절의 관념을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언어들, 예컨대 경제 성장, 국가 안보, 검찰 개혁, 적폐 청산, 정권 교체, 부정부패 척결 등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시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제로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는 진지한 질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국의 시민이 국가를 호명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필요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 상당수는 ‘국가가 나서서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의 다른 표현이다. 이때 국가란 사실상 집권 세력과 정당을 의미한다. 물론 차별받는 약자나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다’라는 원리 위에서 그들의 문제가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약자를 위한 정책은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방식으로 시행되기 일쑤고, 인권이라는 국가의 최종 목적은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일부 영역의 문제로 협소화된다.

   팬데믹과 민주주의

   국가는 왜 팬데믹에 대응해야 하는가? 질병에 맞서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팬데믹에 대응하는 국가의 수단이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정점을 찍었을 때, 적지 않은 서구 국가들이 전면적 이동 제한을 실시했는데, 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초헌법적 결정이었다. 이것은 ‘예외 상태’를 선언함으로써 국가의 목적과 수단을 일시적으로 뒤바꾸는 조치다. 즉, 눈앞의 긴급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을 희생시켜 공공 보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일시 중지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의 생물학적 생존이 국가의 첫 번째 목적이 된 상황은 분명히 비민주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구의 여러 국가가 ‘보건 패스’를 도입했거나 준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물론 그러한 저항 중 일부는 백신에 대한 비합리적 이해와 뒤섞여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건 패스가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차별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백신에 관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어서든,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 우려 때문이든,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예컨대, 유럽연합은 2021년 6월 14일 규칙(Regulation EU 2021/953)에서 백신 비접종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바 있는데, 프랑스 보건 패스가 이 규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팬데믹 대응을 특징짓는 사실 중 하나는 정치적 논쟁 대부분이 방역 정책의 효과에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팬데믹 초기부터 시민에 대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해왔는데, 그것의 위헌 여부가 본격적인 쟁점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영업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집회의 자유는 노골적으로 부정당하지만, 전염병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정당화된다. 이는 앞서 설명한 한국 국가의 특징에서 비롯한다. 즉, 국가의 존재 이유와 최종 목적이 불분명하므로, 공공 보건과 인간의 자유 중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에 대한 질문도 필요 없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와 싸우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된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국가의 기본 원리로 합의된 곳에서, 팬데믹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를 발생시킨다. 생물학적 안전과 인권이 충돌하고,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상이한 의견을 놓고 서로 갈등한다. 한국에서 이런 식의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이 국가의 최종 목적이었던 적이 없으므로, 새삼스럽게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것은 익숙하고 낡은 위기다. 팬데믹은 민주주의의 부재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팬데믹 이후 한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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