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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시선] 여름의 끝
[217호] 2021년 09월 13일 (월) 이지현 편집위원

   지지부진했던 계절이 끝나가고 있다. 얼굴이 시릴 정도로 찬 공기가 필요하다. 습하지 않은 냉기가. 나에게 여름이란 모든 것들을 다 견뎌야만 하는 계절이다. 지나치게 긴 낮을 견뎌야 하고, 습한 온도를 견뎌야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견뎌야 하고. 여러모로 소란스러운 계절이다. 빨리 추워졌으면 싶다가도 여러 이유들로 인해 두렵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인 겨울이 온다는 건 연말이 가까워진다는 뜻이고, 그건 올해의 남은 날들을 점점 깎아 먹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축적일까, 아니면 소진일까?

   지난 7월에는 연구실 대청소를 했다. 3월부터 미뤄왔던 일이었다. 수평이 맞지 않는 테이블과 구형 모니터, 방치되어 있던 라디에이터와 미니 온풍기를 폐기하고 몇 개월 만에 낡은 캐비닛 문을 다시 열었다. 학기 초, 호기심에 한 번 열었다가 큼큼한 습기에 기겁을 하고 닫았던 캐비닛이었다. 지난 학기 내내 찝찝한 덩어리처럼 연구실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언제까지고 그 찝찝함의 부피를 불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캐비닛 안에는 제본 처리가 되지 않은 신문들이 내 키만큼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신문 분류 작업을 다시 하고 라벨 표시를 새로 한 뒤, 바로 옆 철제 책장에 옮겨 정리했다. 캐비닛 내부까지 깨끗하게 닦고 나니 봄부터 내내 미뤄왔던 일을 해치웠다는 쾌감이 들어 좋았다.

   서랍장 안에서도 오랜 시간을 견딘 것 같은 사물들이 제법 나왔다. 아날로그 전화기, 삼각대, 이제는 단종이 됐을 법한 디지털 카메라 등 신문사가 거쳐 온 시간들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오래 살핀 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자료들이었다.

   수기로 작성된 지면 운영 계획과 매호 신문 평가에는 선배들의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 각자의 역할과 기사 분량 체크 등 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반성과 다짐들이 빼곡했다. 미디어센터 산하 기관으로 소속이 바뀌기 이전부터 편집위원 인원과 장학금 및 조판 비용 삭감까지, 대학원 신문사가 버틴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와닿는 순간이었다.

   석사 과정에 진학한 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올해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냈다. 대청소를 한 이후로, 해야 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면 의자의 방향을 돌려 철제 책장 속을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이따금씩 사진들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익숙한 건물 앞에서 찍은 신문사 선배들의 단체 사진부터 대학원 학술제나 인터뷰 등의 취재 사진까지, 치열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찰나의 순간으로 남아 우리의 시간 위에 덧입혀지는 듯했다.

   1학기 종강을 며칠 남기고 종이 신문 폐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우리는 종이 신문이 필요한 이유와 대학원 신문사의 역할을 각자의 종이에 빽빽하게 적고 미디어센터를 나왔다. 추후에 다시 논의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이후 연구실 청소를 하며 다시 느꼈다. 이 일은 소중하다. 많은 선배들이 애를 쓰며 지킨 곳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잘 지켜야겠다.

   올해 마지막 신문 발행까지 끝나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첫 편집 회의 때처럼 추운 계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벽면 칠판에 적힌 신문 편집 일정들을 보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의 막막함을 함께 견디고 있는 이 감각이 요즘 따라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지금 이 시간들도 미래의 어느 누군가에게 흐릿하게나마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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