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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1990년대 한국 사회문화 연구가 소환하는 과거와 현재
崔銀姫, 『韓国のミドルクラスと朝鮮戦争: 転換期としての1990年代と「階級」の変化』, 東京: 明石書店, 2021.
[217호] 2021년 09월 13일 (월) 윤재민 문학평론가, 조선대 강사
   
△ 사진출처 : Amazon

   대부분의 좋은 학술서는 모르던 사실이나 현상을 정련된 언어와 엄밀한 논증으로 비춤으로써 시야의 확장을 선사한다. 어떤 좋은 학술서는 내가 잊고 있거나 사소하게 치부하던 과거의 체험을 소환하여  나와 내가 선 ‘현재’를 반추하게 한다.

   일본 불교대학교 최은희 교수의 최근저서 『韓国のミドルクラスと朝鮮戦争: 転換期としての1990年代と「階級」の変化』는 내게 후자의 경험을 선사했다. 이 책은 1987년 직후 한국사회 전환기를 중산층(middle class) 중심의 사회문화적 재편과정으로 제시한다. 전환기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민주화 직후 전환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냉전시대 한국의 군사독재정부는 북한과의 체제경쟁과 내부통치의 정당성과 안정을 위해 ‘돈’과 ‘노동’을 관리하는 발전주의적 하향식 통치정책을 실시했다. 궁극적으로 통치에 순응하는 탈이데올로기적 근로자(wage earner) 사회를 지향했던 이들의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근로자 사회의 주축인 ‘넥타이부대’ 가 합류하게 되면서 무너졌다. 이때부터 한국사회는 완연한 중산층 중심사회로 진입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민주화 직후 전환기 한국사회의 사회문화적 변동을 고찰하기 위한 방법으로 <KBS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이하 한국전쟁)>(1990)에 주목하는 부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방영당시 거실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시청해야 하는 일종의 한국사 시청각교과서였다. 당시 미취학 아동이었던 내게 흑백화면에 펼쳐진 한국전쟁의 참상과 과거사문제는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에서 오열하는 전쟁고아, 전후 외상 후 후유증을 앓는 정신 질환자의 이미지,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말없이 시청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내게 파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 다큐멘터리를 최은희 교수는 전환기 한국사회의 문화구조 변동을 표상하는 기록물로 주목한다. 여타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듯이, <한국전쟁>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편집자의 목적에 맞게 재구성된 정치적 재현물이다. 최은희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그것은 공영방송에서 기존에 이루어지던 반공기조의 이데올로기적 전쟁관에서 벗어난 전례 없던 한국전쟁 재현의 실험이었다. 중산층의 관점으로 민족·과거·역사를 전유하여 군사독재의 이념적 유산을 벗어던지고, 그 과실인 근로자 중심의 계급구조로 사회를 완전히 일신하고자 하는 전환기 감정구조의 표상인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중산층 사회라는 1990년대 한국 사회문화 연구의 유력한 가설을, 일견 그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당대의 미디어 컨텐츠를 통해, 역사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주류 감정구조를 탐구하는 참조할 만한 선행연구로 제시한다는데 있다.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최은희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한국사회 주류의 구조와 통념들, 이를테면 중산층 편입의 욕망과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의 관념들의 역사성을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이외에도 이 책은 중산층 사회로 재편된 한국사회의 ‘전후문제’인 탈북자, 과거사 화해문제 등도 다룬다. 그러나 해당 사안에 주목하는 한국인 독자가 읽기엔 다소 상식적인 내용에 그치는 감이 있어 아쉽다. 애초 일본독자를 상정하고 쓰여졌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저자의 후속작업을 기다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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