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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무중력 상태
[216호] 2021년 05월 10일 (월) 김민범 석사수료생

  갈 곳이 없다. 지난 학기까지는 집을 나서면 대학원 신문사 연구실로 향했다. 가끔 다른 곳으로 새기도 했지만, 주로 연구실에서 책과 논문을 살폈다. 영화를 보는 날도 있었고, 홀로 남은 날이면 음악을 틀고 사위어가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기도 했다. 자취해본 적 없는 나에게 연구실은 집 이외에 가장 오래 머문 장소다. 몇 번의 이탈 위기에서 잡아준 것도 다름 아닌 연구실과 그곳의 책상이었다.

  학적이 수료로 바뀐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소속감은 빠르게 희석된다. 나를 소개하며 이름 뒤에 붙일 말을 생각해본다. 대학원생이라 말하기 조금 어중간하다고 느낀다. 수료했다는 말을 덧붙이면 논문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다시 학적을 바꿀 때까지 몇 번의 계절이 필요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번 학기 청강하는 수업이 없다. 학교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자 논문에 대한 생각은 옅어진다. 설날을 전후로 연구실에서 짐을 가져오고 나서는 집에서 공부했다. 이동 시간이 없고, 식사를 포함한 비용이 들지 않아 좋았다. 며칠 간은 책상에 앉아 보냈다. 그리고 곧장 일상이 헐거워졌다. 침대가 턱밑이라 휴식과 일과는 구분되지 않았으며 묘하게 눈치가 보였다. 일주일쯤 바닥에 붙어 지내다가 인터넷으로 여러 공간을 검색했다.

  소공동에 있는 공유 오피스와 계약했다. 보증금과 월 이용료는 꽤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게으름을 떨쳐내려면 이 정도 각오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월세방이나 고시원은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주변 환경이 오랜 학교생활의 권태를 떨쳐주고,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보면 나도 비슷하게 성실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착각이었다. 그곳은 어디까지나 ‘사무실’이었다. 읽고 쓰는 공간이 될 수 없었다. 회의실에서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고, 일상적인 잡담과 빈번한 전화 통화가 사무실을 채웠다. 이방인인 나는 귀마개와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이 된다는 헤드폰까지 사용해봤지만, 적응할 수 없었다. 심지어 빌런까지 있었다. 잦은 기침과 한숨, 혼잣말과 목덜미를 때리는 차진 소리는 인내심을 시험했다.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을 마무리할 즈음 다행히도 다시 학교에 연구실이 생겼다.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학기 단위로 신청을 받아 운영되는 집현전에 신청, 좌석을 배정받았다. 처음 들어가 본 대학원 연구실은 생각보다 크고, 적막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작게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전부였다. 겹겹이 쌓인 책과 각자 다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 커다란 창 옆에 내 자리가 있었다.

  짐을 옮길 즈음 소문이 돌았다. 학교에서 연구실을 일괄 수용해서 일반 열람실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새로 받은 좌석에 정을 붙이기도 전에 빼야 할지도 몰랐다. 의견 수렴과 몇 번의 회의 끝에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다시 연구실과 책상을 갖기까지 참 복잡하고 어려웠다.

  연구실은 어제 가름했던 책을 오늘 다시 꺼내 이어 읽을 수 있는 곳 이상의 장소다. 이곳은 자주 희박해지는 목적과 무용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잡아준다. 쉽게 흐트러지는 일상과 휴식을 구분해주고, 성실한 다른 연구자를 보며 자신을 채근하기도 한다.

  중력은 어떤 순간에도 존재한다. 아주 특수한 경우 미약해서 잠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다시 생긴 출근과 퇴근 궤도 안에서 읽고 쓰겠다는 마음을 단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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