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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ORIGINAL] 범죄의 이면에 감추어진 지배
스튜어트 홀 외, 『위기 관리하기』
Stuart Hall, 『Policing the crisis: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New York:Holmes &Merer, 1978.
[139호] 2007년 03월 05일 (월)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1972년 11월 5일 영국의 빈민가 핸즈워스 지역. 한 남자가 세 명의 10대 유색인종에게강도를 당한다. 그는 심각한 구타 뒤 30 펜스의 돈과 열쇠 꾸러미, 담배 몇 개를 강탈당했다. 언론과 경찰, 법원은 이를 “섬뜩한 새로운 범죄의 긴장”으로 묘사하며 무작위적인 퍽치기(mugging)로 명명한다. 이는 전후 영국 사회가 구현하였던 올바른 “영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치명적인 도전으로 규정되었다.

 1970년대 동안 그와 비슷한 일련의 사건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언론과 경찰, 법원의 담론 속에 나타난다. 그 결과 1970년대는 보수적인 사회 통제가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일반 시민들 역시 공포에 떨며 여기에 동조하였다. 공포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 수 없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10대 흑인 청소년은 겉으로는 영국 사회의 한 일원이었지만 실상은 영국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위협하는-대영제국의 자부심과 백인 영국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 등은 꼼꼼한 문헌 연구를 통해 이러한 퍽치기가 1970년대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언제나 퍽치기는 있어왔다. 그러나 퍽치기가 두드러지게 사회적 문제로 나타난 것은 1970년대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1970년대인가?

홀 등은 퍽치기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되짚는다. 당시 19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불황의 시기였다. 영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높은 실업률과 장기화되고 있는 불경기는 국가와 지배 세력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동시에 베이비붐으로 급격하게 세를 확장하고 있던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은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1970년대 영국 사회 속에서 퍽치기가 그처럼 심각한 사회적 공포로 대두된 근저에는 범죄와 흑인 청년에 대한 극단적 통제를 통해 사회의 통합과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가 담겨있던 것이다. 젊은이에 대한 통제를 통해 기성의 가치관을 옹호하려는 보수적 동기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퍽치기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경찰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요점은 퍽치기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것이 새롭게 포장된 배경에는 심화되고 있는 영국 사회의 병리적 뒤틀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성적인 토의의 방향을 제시해야하는 일차적 정의자(primary definer)로서의 언론은 퍽치기에 대한 잘못된 규정을 내림으로써 영국 사회의 보수화에 일조를 한 셈이 되었다. 비록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사회의 보수화를 추동하는 중심과 주변부의 유기적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또한 어떻게 한 사회가 중심 없이도 커다란 경향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홀 등은 이후 1980년대 찾아올 영국 사회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대처리즘의 득세를 예언할 수 있었다.

이상의 내용은 영국의 대표적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과 그의 동료들이 『위기 관리하기(Policing the crisis: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New York:Holmes &Merer, 1978)』를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 것들이다. 이 책은 현재 문화연구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지배세력이 어떻게 위기를 통해, 그리고 그 위기를 관리함으로써 스스로의 지배를 재생산하는지, 또한 미디어가 어떻게 국가의 사주 없이도 유사 국가기관화 되는지, 이데올로기가 어떠한 방식을 통해 대중의 암묵적 지지를 얻게 되는지, 그리고 왜 문화연구자의 정치적·실천적 개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지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꼼꼼하게 기술된다.

문화연구가 갖는 학제적 연구와 방법론적 치밀함이 빛을 발하는 책이 『위기 관리하기』이다. 더욱이 의미를 규정하는 일차 정의자로서 언론이 갖는 주요한 사회적 함의를 밝히는 연구이기에 『위기 관리하기』는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빈번히 언급되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위기 관리하기』는 또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더욱 높은 실천적·이론적 가치를 가지기에 일독을 요하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한국에서도 70년대의 영국 사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한미 FTA 체결과 관련된 정부의 위기 조장은 영국 사회의 퍽치기의 또 다른 판본으로 보인다. 한미 FTA 협상 체결이 안 될 경우에 우리 사회는 중국의 약진과 일본 경제력의 틈새 속에서 고사 직전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한국 사회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더불어 신문과 방송은 이러한 공포의 실제적 근거를 되묻기보다는 한미 FTA 체결과 관련한 정부의 홍보영상을 무제한적으로 방송하며 위기의식의 일상화에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다. 홀의 어법을 차용하여 말하자면-물론 이러한 위기가 부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우리는 왜 지금 이처럼 위기가 강조되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필자는 이와 같은 언론의 보도 태도를 한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퍽치기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위기 조장과 언론의 무비판적인 정부 보도 자료의 인용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황, 양극화, 높은 실업률의 병리적 징후이다. 또한, 참여정부 4년 동안 급격하게 위축된 진보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감소와 이에 따른 일반 민중의 발언권 제약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를 제쳐두고 주류 언론이 반 FTA 논의를 유아적이고 편협한 몽상주의로 파악하는 것은 일차적 정의자로서의 언론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의 언론, 시민사회,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위기 관리하기』가 고전의 반열에 오름으로써 신화로 박제화 되지 않는 이유는, 테러나 경제적 위기의 조장을 통한 위기의 일상화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기 관리하기』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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