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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배움은 물음과 무지의 반복
[215호] 2021년 03월 22일 (월) 김태환 영화연구자

  내게 배움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론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살아간다는 것의 ‘깊은 뜻’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나 공부에 대한 막연한 열정이 있었고, 도서관을 꽉 메운 활자들은 내게 삶의 지혜를 제시해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열정은 벽을 만난 듯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공의 세부적인 지식은 사실상 삶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삶과 유리된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까? 배움이 삶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왔으나, 도리어 삶에서 멀리 돌아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모했다. 사실 나는 삶을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거쳐 세계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오만의 벽과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방황했다. 길을 잃으니 항상 처음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이걸 언제 다하지?’라는 물음이 강박적으로 반복됐다. 
배움을 통해 앎을 구할 수 있을까? 당시 내게 배움이란 어느 정도 ‘끝’이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배움에 관한 들뢰즈의 언급을 만났다. “알기 위해 배우지 마라. 배우기 위해 배워라.” 머릿속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알지도 못하는 ‘끝’을 지향했고, 완전한 암흑에 깃대를 세워둔 것이었다. 배움은 늘 ‘과정’인 것이지, 결과론적인 것이 아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나는 손가락 끝만 보느라 정작 달의 표면을 보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조바심으로 인해 순간순간의 풍성한 세계와 삶을 놓친 것이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몇 편의 학술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배움은 언제나 순간에 있으며, 과정에 있다. 나는 그간 배움을 집 짓는 일로 생각했었다. 단단한 나의 사유를 만들기. 어떠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식을 그곳에 채워 넣고 싶었다. 그러나 사유의 집이 어디까지 단단할 수 있을까? 세계의 수많은 지식은 냉정한 철거반과 같다. 그들은 망치를 들고 사정없이 내 집을 부숴놓는다.


  그래서 지금 내게 배움은 사유의 집을 떠나는 일이 됐다. 집을 떠나 사유의 움막을 짓는다. 나는 이러한 ‘순간의 움막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든 이 움막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배움은 ‘물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음을 찾아 떠나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물음의 끝은 해답을 찾는 것일까? 물음의 끝은 언제나 다른 물음을 끌고 온다.


  물음의 과정은 중요한 삶의 능력이 된 것 같다. 이를 통한 배움이 허황된 지식이 아니라,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 자전거에 대한 앎이 곧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는 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배움은 삶의 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삶의 능력이란 삶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일 같다. 구체적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란 배움을 통해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반성하면서, 타자의 미세한 차이들을 보듬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배움이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 또한 다시 물음으로 제기돼야 할 것이다. 배움은 무지(無知)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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