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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 근대적 여주인공의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눈물〉과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서씨 부인과 노라의 가상 대담
[139호] 2007년 03월 05일 (월) 우수진 연세대학교 국문과 강사

사회자 : 초창기 근대 연극사를 대표하는 두 여주인공들이신 서씨 부인과 노라 부인을 어렵게 한자리 모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씨 부인께서는 1913년 10월에 신파극 〈눈물〉로 장안을 말 그대로 눈물바다로 만드셨던 주인공이십니다. 그리고 멀리 노르웨이에서 오신 노라 부인께서는 1878년에 〈인형의 집〉으로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드시고, 우리나라에는 그로부터 약 30여년 후인 1922년에 양백화씨 번역의 좬노라좭(영창서관)로 처음 소개되신 다음에 본격화되었던 입센주의를 주도하셨습니다. 십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지만, 두 분께서는 우리의 근대 연극사에서 각각 한 획을 긋는 연극형식을 대표하는 여주인공들이셨다는 점에서 한데 모셨습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지요.

서씨 부인 :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노라 부인: 오히려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사회자 : 이 자리를 통해서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바는 우선 두 분께서 각자 자신의 가정에 발생했던 위기에 대응하셨던 방식의 차이입니다. 이를 통해 두 분께서 자기 자신과 가정에 대해서 당시 어떤 인식에 도달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는 연극의 결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고 난 이후의 삶은 어떠셨는지, 혹시라도 당시의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으셨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씨 부인 : (조심스럽게 정숙한 목소리로)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 이상의 위기는 겪게 마련일 것입니다.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셨던 저희 가정의 위기는 기실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깥어른께서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오신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양은행 사무원으로 계셨다가 곧 평양 지점의 중역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부와 명예가 자연 높아지다 보니, 이를 탐한 못된 무리들이 작정하고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평양댁과 장철수 같이 마음먹고 속이려는 이들을 어찌 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행히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셔서 악당들은 천벌을 받았고, 저희 부부와 봉남이는 비온 뒤에 굳어진 땅처럼 예전보다 더욱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노라 부인 : (명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가정의 위기는 날벼락 같은 것이 아니라, 결혼한 순간부터 언제 터질 지 모르게 집안에 장치되어 있었던 시한폭탄 같은 것입니다. 어차피 터질 게 터지는 거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요양할 경비를 마련해야 했고, 또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남편 몰래 친정아버지의 위조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는 직접 서명을 받으려고 했지만, 당시 생사의 기로에 계신 친정아버지께 자식된 도리로서 차마 걱정을 끼쳐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조 서명을 감행했던 것도, 그동안 나 자신을 희생하며 막대한 빚을 혼자 갚아나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었던 크로그스터 씨가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자, 남편은 저를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저로 인해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해가 갈 것을 제일 먼저 두려워했습니다. 제 편에 서서 정의롭게 대응하려고 하기보다는, 크로그스터 씨의 협박과 타협하려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헤르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사람과 함께 했던 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서씨 부인의 관대함이 너무나 놀랍고 또 이해되지 않습니다. 너무 쉽게 용서하신 것은 아닙니까? 용서가 되시던가요?

서씨 부인 : (사이) 글쎄요. 그렇게 물어보시니, 저는 남편을 ‘용서했다’거나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라 부인 : 물론 남편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지만, 위조 서명을 한 것은 분명히 제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인께서는 저처럼 잘못하신 게 전혀 없지 않으십니까. 오히려 어려서 조실부모했던 부군께서 동경 유학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친이신 서협판 어른의 은혜 덕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평양댁을 소실로 얻고 그것도 모자라서 서씨 부인을 내치다니, 참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씨 부인 : 오해가 있으신데, 남편께서 저를 내치신 것은 평양댁을 더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평양댁의 간계에 빠지셔서, 그러니까 제게 다른 남자가 있는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노라 부인 : 하지만 부인에 대한 굳은 애정과 신의가 있었다면, 부인 말씀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뜬금없이 날아든 편지 한 장만 갖고 의심하고 내쫓을 수 있었을까요?

서씨 부인 : (신중히) 제 글씨를 똑같이 모필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쫓겨나는 순간에도 억울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 때문에 남편을 원망해본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그저 누명과 억울함이 풀려서 너무 기뻤고 천지신명께 감사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노라 부인 :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만 못된 여자 같습니다. (웃음) 그런 점에서 부군에 대한 부인의 태도는 마치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딸 같이 보입니다. 저는 모름지기 부부란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동등한 존중과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부부관계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구요.

서씨 부인 : 하지만, 부군은 그렇다 해도, 사랑하는 세 아이를 두고 무작정 집을 떠나신 것은 너무 이기적인 돌발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집 떠난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편보다도 아들 봉남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관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장면도 저와 봉남이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이었구요. 가정 안에서 여성은 아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정작 세 아이의 어머니이신 노라 부인께서 너무 쉽게 가정을 포기하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노라 부인 : (웃으며 그러나 단호히) 얘기를 하면 할수록 부인과 저의 차이점은 점점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정 안에서 여성은, 아니 가정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성은, 아내나 어머니이기 이전에 우선 독립적인 개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완전한 자유를 가진 완전한 개인이 되지 않는 한 여성은 어머니로서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고 오히려 해만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씨 부인 :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궤변처럼 들릴 뿐입니다.

노라 부인 : 〈유령〉에 등장했던 제 친구인 알빙 부인만 봐도 그렇습니다. 알빙 부인은 살아생전에 엄청난 난봉군이었던 남편을 참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죽은 후에도 그 명예를 살리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 오스왈드를 멀리 파리로 유학 보내면서까지 그릇된 남편의 흔적을 집안에서,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가정에서 지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지워지기는커녕 타락한 남편의 잔재가 유령처럼 온 집안에 떠돌아다니지 않았습니까? 알빙 부인은 위선적인 만델스 목사 따위의 충고를 듣지 말고, 진작에 그 우중충한 집에서 떠나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알빙 대령이나 오스왈드는 몰라도, 부인 자신의 삶까지 망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서씨 부인 : 하지만 부인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가정이라는 울타리 너머의 사회는 여성들에게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인께서 위조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여자는 재산권도 못 가지고 따라서 빚도 보증인 없이는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서양 여성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도 조금 빠른 영국에서는 1918년, 상대적으로 늦었던 프랑스에서는 1944년이라고 들었습니다.

노라 부인 : 집을 나갔던 제 행동을 두고 많은 비평가들과 남성 관객들이 맹렬히 비난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출한 여자는 창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악담을 해댔습니다. 따라서 서씨 부인께서 하시는 말씀, 그러니까 여성이 험한 세상에 홀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하니 그대로 집에 남았어야 했다는 것은 그들과 같은 논리로밖에 들이지 않습니다. 즉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논리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서씨 부인께서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으셨던 정숙함이나 모성애와 같은 미덕이 진정한 여성성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서씨 부인 : (불쾌한 듯이) 그런 말씀은 곧 여성으로서의 제 캐릭터를 부정하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가 여성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라 부인 : 아닙니다. 집을 나오기 전까지의 제 삶도 그랬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버지와 남편이 인형 취급해왔던 것을, 저는 사랑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극중에서 남편의 살아있는 장난감처럼 애교 부렸던 제 행동들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비평가들은 제가 집밖에 나서는 순간 창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동안 저는 집안에서 창녀보다 나을 게 없는 존재였습니다. 극 중에서 남편이라는 절대적 타자를 의식하지 않은 채, 참된 나 자신으로서 존재했던 장면은 독립을 선언했던 마지막 장면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가서 삯바느질을 하든 유모 노릇을 하든, 혼자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참된 나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씨 부인 :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히 저는 부인의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애교나 성적인 매력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파극 여주인공들에게는 그런 여성적인 섹슈얼리티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라 부인께서 타랑테라를 추시는 장면은 정말이지 같은 여성이라도 반할 정도만큼 매력이 넘쳤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그저 아름답고 정숙할 뿐이지, 이를 의식한다거나 일부러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신파극에서 그런 섹슈얼리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여성은 기생이나 평양댁 같은 부류들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들의 여성성은 노라 부인에 비해 지나치게 억압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노라 부인 :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다가 애써 참으며) 죄송했습니다. 서씨 부인께서 여성성의 억압 운운하시니 좀…. 사실 신파극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온타가타(女役, 여장 남자배우)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씨 부인 :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한다)

사회자 : (분위기를 수습하며)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신 적은 없으셨나요?

노라 부인 : 각오를 한 것이기에 예상보다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집을 나간 후 바로 친구인 알빙 부인을 찾아갔었습니다. 도착하니 알빙 부인은 발작을 일으킨 오스왈드 앞에서 모르핀 주사를 든 채 어쩔 줄 모르며 서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신 주사를 조금만 놓아준 후에 오스왈드를 요양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알빙 부인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저택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남은 돈으로 깨끗한 여관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갈 곳 없는 레지네도 함께요.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있습니다.

서씨 부인 : (한숨을 조그맣게 쉬며) 평양댁과 장철수에게 갇힌 남편을 겨우 구해내고 마침내 세 식구가 다시 모여 살 때는 정말이지 더없이 행복했었고 이 행복이 영원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돈도 다시 모았고 남편의 지위도 다시 높아졌지만, 남편의 호색(好色)하는 습관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경솔하게 저를 내쫓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요.

사회자 : (마무리하며) 멜로드라마적이었던 신파극과 입센의 사실주의 연극은, 비록 시기적인 차이는 있지만, 모두 우리의 근대 연극이 형성되던 시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그 영향은 계속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들 연극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근대적 연극성과 여성성의 문제 사이에 놓여 있었던 모종의 연관성을 탐색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사하며) 바쁘신 데도 시간 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수진 (연세대학교 국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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