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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길 잘 헤매는 법
[214호] 2020년 11월 09일 (월) 이민주 작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길치의 특징이라는 글을 보았다. 길눈이 밝은 사람들은 특색있는 건물이나 지형을 표지로 삼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길을 분위기로 기억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3층짜리 스타벅스 옆을 지나면서도 ‘차가 쌩쌩 달린다.’,  ‘날씨가 좋다.’,  ‘그림자가 길다.’라고 자신이 지나온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 바로 내 이야기다.

   3년 전 이맘때 참여한 사진 행사에 걸었던 작업 소개를 최근 다시 보게 됐다. “···길을 잃는 날에는 어김없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데 타고난 길치인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10점의 사진은 그렇게 들어선 의도하지 않은 길 위에서 촬영되었다.” 오랜만에 읽으니 멋 부린 말투가 멋쩍지만, 내 사진 작업 과정의 거의 전부가 담겨있는 글이다.

   2015년부터 5년여간 매일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모여 어느새 내 창작 활동의 주요한 원천이 되었다. 꾸준히 전시와 행사, SNS 등을 통해 사진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덕에 사진작가라고 내 소개를 하는 일도 잦았다. 나는 살면서 만나는 우연하고 극적인 순간들을 클로즈업해 사진으로 남긴다. 가벼운 외출에도 카메라를 챙기지만, 촬영 자체를 목적으로 어딘가를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장소도, 인물도, 소재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거리 사진에 가까울 것이다. 

   
     

  거리 사진가에게 길 찾기 감각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돌아서면 새로운 길, 여러 번 다닌 골목도 전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는 나에게 목적지라는 단어는 항상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최단 경로 찾기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속에서 나만의 미묘한 미감을 찾아내는 일에 더 가깝다. 이러한 전제에서는 길을 구조가 아닌 분위기로 인지하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 분위기로 길을 바라보면 절대적인 지표에 덜 집착하게 되고 흐름과 변화가 있는 유동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정보에 집중하며 눌러놓았던 호기심이 살아나고 자동으로 눈이 걸러 오던 작은 요소들에까지 시선이 닿는다.

   거기에 지금 걷는 이 길을 어쩌면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는 길치의 슬픈 예감까지 더해지면 내 눈과 머리의 감도는 최고 수치까지 오른다. 언젠가 들렀던 가게, 빛이 잘 들었던 골목, 애매하게 친한 친구의 집, 한구석이 독특했던 주택을 다시 찾고 싶은데 머릿속 지도가 백지장이어서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주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위기감은 내게 어떠한 절박함을 안겨 주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이렇게 감각의 촉을 곤두세운 채로 절대적이지 않은 것들을 쫓으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극적인 순간을 꽤 자주,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마침 그때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운 좋게 여러 번 반복되면 자기도 모르는 새 사진작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이란 예술가 본인의 기량과 독창성이 담겨있는 것은 물론이고 더불어 우연의 요소까지 갖춘 것이다. 극적인 우연은 작품에 신비로움과 위트, 드라마, 어떨 때는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세트장에서는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압도적인 자연 현상. 시작점을 가늠하기 힘든 우연한 빛의 분포. 미처 예술의 대상으로 보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조형미.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약속한 듯 조화와 대비를 이루는 색.

   
     

   내 마음에 드는 사진들은 대개 이러한 요소를 아주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다. 사람 키의 몇 배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 푸른 회색빛의 시멘트 바닥에 스티커처럼 붙은 연보라색 티셔츠. 주변에는 우연히 아무도 없고 햇빛은 구름과 구름 사이의 공간으로 핀 라이트 켜지듯 들어온다.

   여태껏 이러한 과정으로 찍어온 사진이 쌓여 벌써 수만 장이 되었다. 우연의 순간을 포착하는 즐거움을 그만큼 많이 느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오면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선별해 온라인에 포스팅한다. 공간에 어울리는 다양한 매체에 출력하여 전시하기도 한다. 또 어떨 때는 책으로 인쇄해 진열한다. 이미지가 무한히 가벼워진 요즘, 모든 과정이 과도하게 쉽고 빠르다. 한 장의 사진을 생각 없이 오랫동안 바라보다 찍은 나조차도 이 안에 무엇이 담겨있긴 한 건지 의심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수십 장 수백 장 모이니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읽히는 이미지 간의 흐름이 생겼다. 일련의 흐름이 생긴 사진들에서 내가 바라보는 삶의 모습과 태도가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며 사진 일을 계속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사실 작업을 함에 있어서는 지금도 방황과 헛걸음의 연속이지만, 헤매는 길 위에서 꽤 자주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그간의 경험들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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