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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장판은 어떻게 푸코를 투영하는가?
정상과 비정상의 교차성
[214호] 2020년 11월 09일 (월) 박정수 노들장애학 궁리소 연구원
   
  △ 사진출처 : Pixabay  

   보는 사람이 준비가 안 되면 보고도 못 보는 것이 있다. 미셀 푸코의 ‘장애’ 관련성이 그렇다. 『광기의 역사』는 부랑인 수용시설(구빈원)에 관한 책인 동시에 『정신의학의 역사』와 함께 ‘정신장애인’에 관한 지식과 권력을 다루고 있다. 『감시와 처벌』은 범죄 소인을 가진 비정상인들을 정상인으로 훈육하는 ‘시설’에 관한 책으로, ‘장애’라는 비정상성 때문에 자유는 없고 규율만 있는 시설 수용을 요구받는 장애인과 직접 관련 있다. 그럼에도 『광기의 역사』는 근대 이성의 한계에 대한 철학서로, 『감시와 처벌』은 근대 권력에 대한 정치철학의 맥락에서만 논의될 뿐 ‘장애’ 연관성에 대한 담론은 없었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푸코 저작의 장애 연관성을 보지 못한 것은 장애에 관한 무관심과 무지 때문이다. 장애인 운동이 발전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장애 이슈가 확산된 후에도 푸코와 장애를 연결 짓지 못한 데는 마르크스주의적 진보사관의 영향이 있다. 노동자 계급을 변혁 운동의 중심에 놓는 인식 틀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노동 불가능한 몸, 가치생산에 적합하지 않다고 간주된 장애인이 아무리 억압받고 처절한 투쟁을 한들 변혁 운동의 주체로 간주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진보 담론은 푸코 저작을 평가할 때도 편견으로 작용해 왔다.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기 푸코와 후기 푸코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단절선을 긋고 후기 푸코, 특히 1980년 이후 ‘자기-돌봄’에 대한 연구를 자유주의로의 ‘전향’으로 비난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전반기 푸코의 근대 지식-권력 비판은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비판의 외연과 방법론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의 역사』 1권에서 권력의 본질을 주권-사법적 억압으로 보는 ‘억압가설’을 비판하고 『안전, 영토, 인구』부터 ‘통치성’에서 권력의 본질을 찾고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를 징검다리 삼아 1980년 이후 자유를 포함하는 통치, 자율-통치의 역사를 복원할 뿐 아니라 반복하려는 자유주의적 기획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 자유주의, 혹은 자율주의 모델은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이용하여(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를 변혁하는 마르크스주의 혁명 모델을 폐기하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부터 푸코의 권력 분석은 주권-사법-억압 모델에 따른 마르크스주의 권력론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과 집단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통치성’에서 권력의 본질을 본다. 푸코에게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바꾸는 것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바꾸는 것, 통치의 스타일과 테크놀로지를 바꾸는 것이다. 자기와 타인의 삶을 ‘다르게’ 통치하는 방식과 테크놀로지를 발명하고 실험하는 것이 지배적 통치체제에 맞선 대항-통치의 집단적 흐름을 낳고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회는 변화한다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다.

   1970년대 중반 영국에서 출현한 ‘장애학’은 푸코보다 마르크스의 사유를 참조했다. 1976년 ‘분리에 저항하는 신체장애인 연합’은 의료적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날카롭게 구분하면서 장애는 손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 한마디로 ‘억압’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진보적 장애인 운동 역시 ‘사회적 장애 모델’에 따라 장애인을 시설과 편견의 벽 안에 유폐시키는 제도와 법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동권 투쟁을 통해 저상버스,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특수교통수단을 만들었으며 탈시설 투쟁으로 수많은 장애인을 시설에서 탈출시켰고 지역사회에 함께 살기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사 제도,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와 주간돌봄 센터를 만들었다.

   영국의 사회적 장애 모델에서는 이 과정을 ‘정상화’라고 부른다. 장애인의 비정상적인 삶을 일반 시민과 동일하게 정상화한다는 의미다.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불만인 건 이렇게 별 문제의식 없이 ‘정상성’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정상성에 내재하는 지배계급의 도덕, ‘정상화’를 위한 사법, 감금, 규율 장치, 정상과 비정상을 집요하게 구분하는 담론의 정치성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정치범을 구속하는 감옥은 나쁘지만 감옥 자체가 나쁜 건 아니며,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는 사법은 나쁘지만 사법과 재판 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는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난민, 부랑인 등 ‘비정상’으로 소수화 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는 지배계급과 다르지 않은 것에 푸코는 화가 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유관계에 집중한다. 사물의 소유(재산)를 가리키는 ‘property’란 단어에는 특성의 소유(정체성)가 담겨 있다. 사물의 소유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소유권 투쟁이 ‘정체성’ 운동의 성격을 갖는 이유다. 장애인 운동이 장애인에게 주어지지 않던 집과 거리와 직장과 프라이버시의 소유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정체성 운동의 한계다. 물론, 모든 저항운동은 억압받은 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체성에 멈추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구획 다툼, 배타성, 소유권으로의 함몰과 같은 권력 효과가 발생한다. 장애인도 ‘정상적’ 삶을 갖게 하는 복지 투쟁 속에서 ‘장애인’ 정체성을 어떤 ‘자격’이나 ‘재산’(property)처럼 지키려는 태도가 생길 수 있다.

   정상화 권력은 장애인에게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이주민, 부랑인, 노동자, 심지어 평범한 시민에게도 작동한다. 정상성 담론에 의해 차별과 배제가 작동할 때마다 비정상화된 사람들과 장애인 사이에는 교차성이 발생한다. 푸코의 철학이 장애인 운동에 주는 가르침은 바로 그 교차성의 감지에 있다.

   푸코 철학의 처음과 끝에서 오늘날 장판(장애인 운동판)에 투영된 교차성은 장애인과 동물, 특히 장애인과 개의 교차성이다. 2017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국민연금공단 건물 외벽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나 박경석,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글씨를 썼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럼, 개는? 개는 막 대해도 괜찮다는 건가? 물론, 인간중심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의 백인 노동자가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개(동물)를 밀쳐낸 것과 시설에서 동물적 생존만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의 인간 선언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진보적 장애운동은 장애인도 ‘인간’임을 주장하면서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왔다.

   푸코의 『말과 사물』은 인간학의 출현 과정을 고고학적 시선으로 탐사한다. 그러면서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지식 속에서 출현한 ‘인간’ 개념은 근대적 인식 지층의 붕괴와 함께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인간학을 고고학적 유물로 다루는 푸코의 고고학적 시선은 인간에 대한 담론을 당연한 것으로, 역사적 진보로 여기는 태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말하고 노동하는 완전한 유기체로서의 ‘인간’ 본질이 근대 생물학, 언어학, 경제학의 출현 과정에서 응결된 관념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노동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며 불완전한 유기체를 가진 비정상적 인간 부류, 즉 ‘장애인’이 ‘인간’의 타자로 출현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인간의 이름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장애인 운동의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복화술로 말해준다.

   1970년대 들어와 푸코는 『감시와 처벌』, 『비정상인들』에서 범죄자, 비행청소년, 정신병자, 발달장애인 등 ‘비정상인들’에 대한 인간학이 감옥, 학교, 정신병원의 규율-정상화 권력과 맺는 연관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한다. 1970년대 후반 『성의 역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는 우생학, 통계학 등의 인간학과 생명-통치 권력의 연관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푸코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되는 권리, 즉 ‘인권’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비판하면서 보다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피통치자의 권리’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리고 1983년 마지막 강의에서 푸코는 ‘인간’의 도덕과 관습을 전복하는 진실을 추구한 견유(키니코스) 학파, 즉 ‘개 같은’(kinikios는 ‘개 같다’는 뜻이다) 철학 전통을 탐사한다.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탈시설한 장애인의 삶에도 ‘키니코스’한 면이 있다. 탈시설 장애인의 삶은 ‘정상화’된 삶이라기보다 ‘인간’의 본질에 드리워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물어뜯는 개 같음, 인간의 본질을 해체하며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의 교차성을 만들어내는 견유주의적인 급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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