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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수많은 눈빛
[213호] 2020년 09월 21일 (월) 송기영 사진가
   
  △ <너와 극장에서> Episode 2. 극장에서 한 생각  

   영화 스틸 사진가로서 첫 촬영 현장에 가던 날을 떠올린다. 촬영지인 대구로 내려가는 새벽 기차 속에서 촬영 현장을 상상하며 '단편영화니까 스태프가 많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막상 도착한 촬영 현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있었다. 한 편의 영화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스태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에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일이라 촬영 현장의 각 팀은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고 업무를 정확히 구분 짓는다. 각자의 역할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촬영팀의 업무에 음향 팀이 간섭하는 일은 없고, 분장팀의 업무에 조명팀이 간섭하는 일도 없다. 현장에는 업무의 경계 이외에도 '카메라'라는 또 다른 경계가 존재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영화관의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배우들을 담아내는 스태프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영화 속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앞과 뒤는 또 다른 경계를 만들어낸다.

   스틸 사진가는 촬영 현장의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마케팅을 위해 홍보용으로 사용될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스태프들을 촬영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레딧을 자세히 살펴보면 스틸 사진가는 현장 스태프로 분류되지 않고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다른 이들과 함께 현장에 있지만, 현장 스태프는 아닌 모순. 덕분에 나에게는 한발 물러서서 현장을 여유롭게 관찰할 기회가 주어진다.

   스태프들이 다음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빠져있다가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즈음에 자리를 잡는다. 최적의 구도를 위한 장소에는 이미 영화 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영화 카메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거나 혹은 아예 색다른 각도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자리에 위치하면 촬영이 시작된다. "레디, 액션!" 감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촬영장의 공기는 무거워지고, 배우의 눈빛은 진지해진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배우의 호흡에 맞춰 똑같이 숨을 쉬곤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다. 촬영장에 흐르던 긴장감은 감독의 "컷!" 외침과 함께 고무줄이 튕겨 나가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스태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장비들을 옮기기 시작한다.

   "모니터하고 갈게요!" 조연출의 외침이 촬영장에 울려 퍼진다. 현장에 있던 배우들과 스태프는 감독 모니터 앞에 모여 조금 전에 촬영했던 장면을 다 함께 살펴본다. 모두가 같은 표정을 하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30초 남짓한 순간. 촬영장을 뒤덮었던 여러 경계는 흐려지고,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의 '집중하는 눈빛'이 촬영장을 가득 채운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을 촬영한다.

   
  △ <너와 극장에서> Episode 1. 극장쪽으로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지난 며칠간 찍었던 사진들을 둘러본다. 사진을 고르다 보면 사진 한 장 한 장이 가지고 있는 현장의 분위기를 곱씹게 된다. '이때는 현장에 그런 일이 있었지', '이때 배우님 연기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야.' 사진 이미지를 통해 떠오르는 촬영장의 기억은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의 증거물로 만든다. 나는 촬영 의뢰를 받고 정해진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의 사진을 찍은 것일 뿐인데,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은 마치 나의 경험을 덜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나의 선택을 받은 사진은 수천 장 중에 채 백 장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9개월 뒤에 개봉했다.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오르는 건 처음이었던 만큼 꼭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왔다. 멍하지만 또렷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 주인공들의 표정이 스크린에 가득 비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사람들의 표정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관객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상영관에 앉아있는 수십 명의 관객은 서로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테지만 모두가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지난해 촬영 현장에서 내가 목격했던 그 눈빛과 똑같았다. 거기서 상영되고 있던 영화는 관객들을 공동체로 묶어내며 개개인에게 존재하던 경계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 <너와 극장에서> Episode 3. 우리들의 낙원  

   영화 상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당시에 현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를 마주쳤다. 단번에 그를 알아봤던 내가 현장 사진을 받아보았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현장 스태프가 아니었던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서운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의 노력이 담긴 유일한 사진은 아직도 전달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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