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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시선] 원격의 삶
[213호] 2020년 09월 21일 (월) 김민범 편집위원

   체한 듯한 여름이 지났다. 진탕 더울 거라는 예보와는 다르게 아주 오래 비가 왔고, 성미 사나운 태풍이 종종 지나갔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이 있었는지 가물거린다. 9월의 시작과 함께 반바지는 개켜 넣었다. 추석 때까지는 덥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민틋하게 다음 계절이 오고 있다. 폭염과 함께 주춤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코로나 19만 기승이었다. 마스크는 일상용품이 되었고, 일기 예보와 확진자 수를 살피는 빈도가 비슷해졌다. 비일상적인 것들이 익숙해지는 일과 다르게 세월은 유달리 빠르게 지난다.

   선, 후배, 동료 그리고 교수님의 얼굴을 노트북 화면 속 작은 사각형 안에서 만나는 일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학기가 시작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일이 모두가 듣는 공적인 일이 되어 주춤하게 되고, 수업이 끝나고 간혹 이어지던 술자리도 불가능해졌다. 기기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은 이전 학기보다 자연스럽지만, 마이크를 켜서 발언권을 얻는 일, 채팅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에 빠르게 정보를 찾고, 주변에 놓여져 있는 책을 통해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방에 존재하는 모습은 함께 공부한다는 감각을 쥐여주지 못한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채팅을 치고 온라인 강의실을 나서는 일은 매번 낯설다. 석사 마지막 학기이기에 어떤 학우는 영상 속의 모습으로만 영영 존재하게 됐다.

   매년 영화를 핑계로 5월 전주, 8월 정동진, 10월 부산으로 향했다. 먹기 바빴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사실상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가볼 엄두도 내지 않았고, 쑥불이 일렁이고, 자유롭게 모여 영화를 보던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아주 적은 인원만이 참석할 수 있는 행사가 됐다. 항상 태풍과 함께했던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축소된 규모 혹은 개최 취소까지 고려하고 있다.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일이 어색해지고 있다.

   대신 OTT 서비스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만원 내외의 가격을 지불하면 누구든 커다란 스크린을 간단히 빌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사정에 맞춰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빔과 스크린이 갖춰진 홈씨어팅으로 영화를 마주하게 됐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멀어지고 있다.

   시청부터 광화문까지 전 차로가 비워지고, 거리예술과 시민들로 가득 찬 10월 축제의 풍경은 올해 없다. 서울거리예술축제도 장고 끝에 축제 일정을 취소했다. 축제의 개최 여부보다 거리예술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커다란 질문이 생겼다. 거리에 모이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상황 속에서 도시의 맥락, 거리의 지형지물, 보행자가 관람객이 되는 거리예술의 특성이자 매력이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은 연극과 뮤지컬 극장도 다르지 않다.

   연이은 축제들의 취소로 일상은 보다 단조로워지고, 간혹 받아서 하던 일들이 끊겼다. 지원금으로 부족한 등록금을 메우고, 신문사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연구를 지속한다. 신문사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마스크와 함께 서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상황을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이후와 다음이라는 단어들은 지금을 소거시킨다. 위기에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원격의 삶에서 서로를 붙잡을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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