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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시선의 끝에 스며든 기억들
<남매의 여름밤>
[213호] 2020년 09월 21일 (월) 정태현 편집위원
   
  △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사진출처 : 그린나래미디어)  

   옥주네 가족은 할아버지네로 이사를 간다. 여름동안 새로운 곳에서 지내게 될 옥주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헤어짐이 어려운 그녀는 정든 집을 떠나기 전 빈 공간을 세밀히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영화도 남겨진 그곳을 함께 응시한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는 걸까?

   <남매의 여름밤>에는 ‘부재’의 정서가 ‘가득하다’. 옥주와 엄마의 관계를 살펴보자. 둘은 멀리 떨어져 지낸다. 동생 동주는 엄마와 연락하며 간간히 만나지만 이와 달리 옥주는 엄마와 만나지 않는다. 옥주는 떠나가 버린 엄마에 대한 앙금이 깊게 남아있다. 엄마는 부재하지만 그녀에 대한 옥주의 감정은 영화를 가득 메운다. 옥주는 동생이 엄마를 만나고 온 것도, 자신의 선물을 대신 받아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억눌렀던 감정이 터지듯 동생을 타박하는 그녀에게서 엄마에 대한 깊은 감정 골이 느껴진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그녀는 한편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옥주는 고모에게 아직도 할머니가 보고 싶은지 물어보며 그리움의 기한을 가늠해본다. 보고 싶은 할머니가 가끔 꿈에 나온다는 고모의 대답에, 옥주는 의미 모를 말을 꺼낸다. ‘연락하지 않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하소연에는 연락 한번 없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내재돼 있다. 옥주의 마음속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간다.

   옥주의 꿈에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왜 하필 실제가 아닌 꿈에 등장한 것일까? ‘보고 싶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난다’는 고모의 말이 옥주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꿈이 지닌 특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꿈속 소리와 이미지는 정신적 현상이지만 실제인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우리는 생생한 꿈을 통해 ‘결여’를 망각하기도 한다. 그 생생함이 가득 찬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주는 꿈에서만큼은 엄마의 부재를 망각한다. 어쩌면 부재를 깨닫기 위해선 역으로 존재를 확인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꿈속 엄마의 존재로 인해 잠에서 깬 옥주는 그녀의 부재를 실감한다. 엄마가 꿈속에서만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남매의 여름밤> 스틸 (사진출처 : 그린나래미디어)  

   꿈속에서만 엄마가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에는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옥주는 매번 잠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고모의 전화에, 고모부의 소란에, 아빠의 전화에, 동주가 부르는 소리에, 그리고 할아버지의 오디오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영화는 옥주가 깨지 않고 잠자는 모습을 엔딩 시퀀스에서야 비로소 드러낸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뒤 집에 돌아온 세 가족은 말없이 식사를 한다. 이때 옥주를 바라보는 시점 숏이 돌연 등장한다. 옥주는 그 시선에 반응하듯 바라본다. 시선의 끝엔 할아버지가 자주 앉던 소파가 자리해 있다. 옥주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으로 가슴 속 응어리를 모두 게워냈을 때 옥주는 쓰러지듯 잠을 잔다. 다음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방에는 옥주가 곤히 자고 있다.

   이어 영화는 옥주가 여름동안 지냈던 할아버지네 공간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옥주가 잠을 자는 이전 숏과 연결해 생각하면 마치 옥주의 꿈을 보여주는 듯하다. 빈 공간들을 비추는 숏들의 연쇄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옥주는 이번에도 ‘빈자리를 응시’한다. 그 시선이 닿는 한곳 한곳마다 옥주의 기억이 따스하게 배어 있다. 어느 새벽 할아버지가 듣던 오디오 속 노래를 멈추지 않고 계단에 앉아 듣던 옥주처럼, 마치 할아버지의 추억에 공감하는 듯한 옥주처럼 영화는 이제 그녀를 깨우지 않는다. 영화는 막이 내렸지만 옥주의 애틋했던 순간들이 스크린 밖으로 번져 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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