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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문학사를 읽는다는 것
문학사의 가능성에 대한 사견
[213호] 2020년 09월 21일 (월) 권영민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문학사는 문학의 역사다. 문학사는 문학의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라는 말이 지시하는 시공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문학사의 대상과 그 범주는 문학의 보편성과 역사적 실재성을 통합함으로써 그 논리적 체계를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가 문학과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인식의 방법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는 과거 사실을 기술한다. 역사의 기술에서는 그 대상의 사실성과 논의의 객관성이 강조된다. 역사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사실은 원인과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전개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하나의 진행과 발전이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이것을 역사의 전개라고 명명하기도 하고 진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역사상의 모든 사건은 각각의 개별적 속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적 성격을 중시하게 된다.

   문학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문학은 그것이 어느 시대에 등장한 것이든지 간에 그 시대적인 위상이나 역사적 조건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사고라고 하는 합리적 논의의 영역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라고 하는 개인적 감정까지도 함께 다룬다.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 표현의 모든 영역이 문학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개개의 문학 텍스트는 어떤 원인과 결과를 통해 드러나는 문학적 사실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존재 의미를 중시하며 현재의 관점에서 이를 재인식하고 재평가한다. 그러므로 문학 텍스트는 특정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지만, 반드시 그 시대적 문맥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을 통해 새롭게 그 의미가 해석되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그 양식과 체계 역시 선험적인 것이 아닌 가능성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문학 텍스트는 완결된 형태로 고정된 위치에 자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역동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것은 분명 그때 거기에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새 시대의 독자와 다시 만난다. 각 시대의 문학은 어떤 발전의 단계를 따라 연속적인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그 시대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학 텍스트는 특정 시대의 창조적 산물이지만 언제나 현재의 문학 속에 함께 어울려 존재한다.

   그런데 문학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문학 텍스트를 역사적 실체로 취급하며 그 존재 방식과 의미와 가치를 하나의 역사적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문학 텍스트의 본질적 속성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 부여되는 시대적 의미를 동시에 기술한다는 뜻이다. 문학 텍스트의 의미와 가치는 그 사회 문화적 기반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더욱 풍부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학사 연구가 이미 소멸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작업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존재를 실현하고 있는 실체로서의 문학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그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문학사 연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학 텍스트는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역사의 자취가 아니다. 문학사는 과거의 문학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발견하고 재구성해야 할 논리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문학사 연구가 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인 동시에 그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문학은 한국 사회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의 산물이다. 이러한 개념의 확립은 한국문학의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은 문학이 기반하고 있는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과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은 근대 이전의 문학과 근대 이후의 문학이 모두 문학사라는 전체적인 체계 내에서 연속성을 지니는 역사적 실체로 인식된다. 물론 문학사의 전체성이라는 개념은 문학적 사실에 대한 기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가 문학의 양식 개념과 그 시대적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 문제는 문학 양식의 생성만이 아니라 그 변화의 시간적 휴지부를 어떻게 찍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문학의 흐름 자체는 결코 시대적으로 명확하게 구획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양식은 문학사 연구의 기초 개념으로서 문학적 현상을 설명하고 기술하는 데에 핵심을 이룬다. 문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문학의 양식 개념이 없다면 각 시대의 문학을 서로 연결하여 그 보편적 성격과 공통된 경향을 추구하는 전체적인 문학사를 서술할 수가 없다. 문학 양식은 본질적인 면에서 일종의 제도적 질서 개념이다. 수많은 문학 텍스트와 그 경향을 전체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문학 양식 개념에 기초한다. 문학의 양식은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작품들을 하나의 유형과 범주 속으로 끌어들여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학사 연구에서 시대 구분은 문학 텍스트의 시대적 순서 개념과 그 문학적 본질 개념을 상대적으로 통합하는 일종의 역사적 인식 행위에 해당한다. 이것은 문학 텍스트에 대한 심미적 이해와 역사적 인식을 결합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문학 양식을 어떤 하나의 규범을 기준으로 논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문제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은 문학사 연구의 통합적 관점을 통해 열리게 된다. 문학사의 시대 구분은 문학적 사실에 대한 일종의 순서 개념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은 문학의 본질 개념에 대한 해석과 그 시대적 배열을 통해 이루어진다. 문학사의 시대 구분은 문학 양식의 시간적 순서 개념과 문학 텍스트의 미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논리 체계이기 때문이다. 문학사 연구는 각각의 시대에 등장한 문학을 통하여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추상화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한 시대의 문학이 보여 주는 본질적인 가치문제를 다루고자 할 경우 필연적으로 문학과 시대정신에 관한 논의를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문학사 연구는 그 대상이 되는 작품의 역사적 위치를 규정하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작업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로서 문학 텍스트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드러내는 양식적 특성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문학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문학적 해석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문학 텍스트를 놓고 이루어지는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문학사 연구는 문학의 역사적 연구라고 하는 방법론적 차원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만은 아니다. 문학사는 창조적인 예술로서의 문학을 학문적 연구라는 논리적 범주 속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여기서 해석과 평가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실천적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문학사 연구는 독자적인 방법론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등장한 모든 문학적 현상을 하나의 과제로 상정하고 그것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실천된다. 그러므로 문학사 연구는 문학 텍스트로부터 추상할 수 있는 지배적 관심을 통해 그 텍스트의 존재 의미를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문학은 다른 민족의 문학과 구별될 수 있는 특정의 역사적 토대와 문화 기반 위에서 생성된 구체적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문학사 연구는 바로 이러한 한국문학의 본질 해명에 필요한 방법과 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문학사의 체계와 그 방법의 논리에 집착한 나머지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단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문학사 연구를 통해 한국문학에 내재하고 있는 어떤 의미와 가치 발견하고 거기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문학사 연구의 궁극적 목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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