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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코로나 이후의 인간학
[213호] 2020년 09월 21일 (월)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평이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물은 자연이 자신에게 부여한 본능구조에 따라서 살 뿐이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미래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이 구현해야 할 미래를 어떤 것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삶의 모습은 달라지는 것이다. 미래가 이렇게 열려 있는 것과 함께 또한 과거도 열려 있다. 물론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개척해야 나가야 할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과거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도 열려 있다. 부처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과 재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미래를 의식하고 그러한 미래에 비추어 자신의 과거를 해석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시간 의식을 갖는 존재다.

   코로나라는 사태의 특수한 상황을 맞아 우리는 미래와 과거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와 함께 우리가 처한 특수한 상황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을 가능한 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누구나 이러한 상황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길어야 몇 달이면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고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이 언제 종료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람들 간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주지하듯이 가장 문제 되는 것은 경제적 피해일 것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이 속출하는 것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또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사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항상 벌어지던 일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사람들이 서로 간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그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코로나 이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보통의 경제 위기 상황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을 시간 의식에서 찾았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 의식은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미래를 떠올릴 수 있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비할 수도 있고,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에 과거에 범한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시간 의식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떠올릴 수 있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며, 과거를 기억하기에 과거의 트라우마에 짓눌려 살 수도 있다.

   시간 의식은 이렇게 부정적인 측면을 갖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무력감과 고독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노출되기 쉽다. 우리는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가고 싶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또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부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책임질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지만 어떠한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지 그 방향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리는 방향 상실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인간이 무력감과 고독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을 갖게 된다는 사태로부터 우리 인간은 인간에게만 특별히 강렬하게 나타나는 열정을 갖게 된다. 인간은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되며, 고독감에서 벗어나 다른 인간들이나 집단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열정을 갖게 되고, 또한 방향 상실의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결단에 지침이 될 수 있는 의미체계를 갖고 싶어 한다. 이러한 열정은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자기보존 욕망이나 종족 보존 욕망보다 더 강렬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고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자기보존 욕망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고독감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없는 현실에서 고독감과 아울러 무력감도 더 심각하게 느끼며, 어느 누구와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향 상실의 느낌을 더욱 심각하게 느낄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을 더욱 심화시키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들을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식보다는 병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자처하는 광신적인 종교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방식으로 방향 상실의 느낌을 극복하는 동시에, 그러한 이념들을 공유하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통해서 고독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라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획득하려는 방식으로 고독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려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이 더 심화되면서 그것들을 이렇게 병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방향 상실의 느낌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법은 사랑과 연대밖에 없다고 했다. 뻔한 이야기지만 사랑과 연대의 정신이 코로나 이후의 스산한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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